김윤철 국립극단 감독 “검열 문제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 사퇴 압력 받았다”

입력 2017-05-03 10:45 수정 2017-05-03 10:58
김윤철(오른쪽)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2일 서울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 지하 1층에서 열린 '젊은 극작가들의 창작환경과 공공극장의 역할'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 옆은 정명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 최현규 기자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시절 검열 문제로 사퇴 압력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김 감독은 2일 저녁 대학로 좋은공연 안내센터 지하 다목적홀에서 열린 ‘젊은 극작가들의 창작 환경과 공공극장의 역할’ 토론회 중 “검열과 관련해 국립극단이 외압을 많이 받았다. 나 역시 2015년 가을쯤 김종덕 장관으로부터 사퇴 압력도 받았지만 거절했다”면서 “국립극단이 자기검열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국립극단은 그동안 검열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열은 작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에 대해 행해졌다. 하지만 국립극단은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윤택 고선웅 김영하 박근형과 작업했다. 문체부를 끈질기게 설득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정명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 역시 “국립극단에 검열 압력이 많이 들어왔고 나 역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위서를 써야 했다. 감독님을 비롯해 전 직원이 검열 압력에 필사적으로 대응했다”고 덧붙였다.

2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 지하 1층에서 열린 '젊은 극작가들의 창작환경과 공공극장의 역할' 세미나에서 평론가 이진아(오른쪽)의 사회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펼치고 있다. 평론가 이진아연출가 김재엽, 극작가 김슬기, 극작가 구자혜, 극작가 고연옥, 정명주 국립극단 팀장,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왼쪽부터). 최현규 기자

 이날 토론회는 극작가 고연옥이 ‘연극평론’ 2017년 봄호에 게재한 기고문 ‘국립극단 작가의 방-왜 극작가를 교육, 교정하려 하는가’를 통해 지난해 5월 국립극단이 자체 검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불거지자 만들어진 자리다. 당시 정명주 기획팀장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작가들에게 과거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개구리’(박근형 연출) 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 요지다. 이는 자체 검열 의혹과 함께 참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시도로 읽혀졌다. 당시 참가 작가들이 이후 SN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잇따라 발언하는 등 논란이 커졌다.

 정명주 팀장은 “작가의 방과 관련해 개구리 같은 작품 쓰지 말아달라고 한 적은 없다. 작품의 소재와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검열이나 배제도 없었다. 하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 예술감독이 바뀐 후 방향성을 예견할 수 없는데다 국립극단으로서 책임이 있어서 공연을 올리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해선 안되는 자기검열이었다고 생각한다. 2기 작가의 방은 좀더 많은 분의 의견을 수렴하고 준비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이날 토론회는 작가의 방 논란에서 비롯됐지만 박근혜 정권 당시 가혹했던 블랙리스트에 상당 부분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 시발점으로 알려진 2013년 연극 ‘개구리’ 이후 후폭풍과 국립극단의 공공성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검열백서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연출가 김재엽은 “국립극단은 지난 몇 년간 ‘개구리’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국립극단 예술감독과 프로듀서의 침묵이 연극인들을 아프게 만들었다”면서 “공공극장의 역할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국립극단의 경우 ‘국립’ ‘국가’라는 것에 시달려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했고, 논의 과정이 사적으로 이뤄진 부분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