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볼수록 진국이다. 이토록 다재다능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2PM(투피엠) 멤버 겸 배우 이준호(27) 말이다. 그가 출연한 MBC ‘나 혼자 산다’가 뜨거운 반응을 모은 것 역시 그의 끝없는 반전 매력 때문이었으리라. 무대 위 화려함, 작품 속 진중함을 거둬낸 그는 소탈한 청년이자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연기학도였다.
아직은 가수 이준호의 모습이 익숙할 테다. 사실 그는 꽤 훌륭한 연기자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종영한 ‘김과장’을 통해 대중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됐을 테다. 이준호는 극 중 검사 출신 엘리트 서율 역을 맡아 물오른 연기를 펼쳤다. 김과장 역의 남궁민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결코 밀리는 법이 없었다.
가수로 데뷔했으나 이준호는 원래 연기 지망생이었다. 고교 시절 연극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시·도 단위로 치러지는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SBS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 서바이벌’(2006)에서 1위를 차지해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됐으나, 그는 연기에 대한 꿈을 버린 적이 없다. 대학에서도 연극영화학을 전공했다.
2PM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영화 ‘감시자들’(2013) 오디션을 보게 됐고, 이 작품을 계기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영화 ‘스물’ ‘협녀’(이상 2015), 드라마 ‘기억’(tvN·2016) 등에 출연하며 성공한 연기돌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기초를 더 탄탄히 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이었다.
“‘스물’ 때는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면, ‘김과장’을 통해서는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선배님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게 많아요. 특히 책임감 없이는 작품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죠.” 또 한 발짝 성장한 5년차 배우 이준호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과장’ 촬영을 무사히 마친 소감은.
“3~4개월 촬영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봄이더라고요. 추운 겨울에 시작해서 계속 핫팩 붙이면서 촬영했었는데…. 중간에 잠을 못 자서 힘들었을 땐 빨리 끝났으면 했었는데 막상 끝나니까 좀 서운하네요.”
-초반 악역에서 점차 선해지는 인물,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김과장 편으로 돌아설 때 개연성을 잃지 않도록 갱생의 여지를 두고 연기했어요. 다채로운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불쌍하고 귀여우면서 장난기 있어 보이게. 그러면서도 확실한 카리스마가 필요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열렬한 연기 호평을 받았다. 물이 올랐다는 평가도 있고.
“글쎄요. 전작들에선 제가 이끌어가며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었어요. ‘스물’은 김우빈·강하늘과 셋이 분담하는 게 각각 달랐고요. ‘감시자들’ ‘협녀’는 주도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죠. ‘김과장’에서 처음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실망을 시켜드리진 않은 것 같아 기분 좋네요.”
-배우로 활동하면서 ‘아이돌 출신’ 꼬리표가 아쉽게 느껴진 적은 없나.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아이돌로 데뷔했고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가 연기를 하니, 당연한 거겠죠. 2PM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평생 갈 꼬리표인 것 같아요. (그걸 떼어내는 건) 제 몫이 아닐까 싶어요. 열심히 해나가다 보면 모두들 배우로 봐주시지 않을까요.”
-연기자로 성장해오면서 스스로 어떤 성취감을 느꼈는지.
“저는 뭐든 대충하는 게 싫거든요. 작곡이나 솔로활동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꿈이 많은 만큼 자존심도 너무 커서 모든 걸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러니까 완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잠도 잘 안 자요. 다른 일을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앞으로도 아마 계속 피곤할 거예요. 솔로가수로, 배우로 활동하면서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2PM과 회사(JYP) 이름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국내에선 2PM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시선도 있다. 그룹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는지.
“미래에 대해 고민하죠. 그런데 걱정하지는 않아요. 멤버 개개인이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저 또한 그걸 꿈꿨기 때문에. 사실 고민은 데뷔 초 다들 개인활동하는데 저만 아무것도 못했을 때 많이 했죠. 그런데 ‘감시자들’ 찍고 일본에서 솔로 앨범도 내고 하면서 걱정이 줄었어요.”
-찬성과 함께하는 대학원 생활은 어떤가.
“작년에는 좀 바빴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드라마도 찍어야 했고 공연 스케줄까지 겹쳤거든요. 어쨌든 학교생활이라는 게 맨입으로는 절대 안 되는 거니까, 시험이나 과제 같은 건 빠짐없이 다 했죠. 잠을 쪼개 가면서 하는데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대학원 진학까지 한 건 연기의 끝을 보겠다는 의지인가.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닌데요(웃음). 사실 전 연기를 글로 배운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인데, 무대의 원리와 개념에 대해 배우면서 정말 큰 도움을 얻었어요. 기초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교수님도 기본 없이 날 것만으로는 얼마 못 간다고 하셨어요. 또 무대·조명 디자인은 공연 무대 연출에도 써먹을 수 있더라고요.”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해나가면서 적잖은 제약이 있을 텐데.
“그 고민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에요. 어쨌든 1년에 한번은 2PM 활동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작품을 다할 순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쉬움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마인드였어요. 점차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려 해요. 이제는 좀 더 작품을 자주 해볼 생각이에요. 최소한 1년에 2개씩은 하고 싶어요.”
-그룹과 솔로, 그리고 연기. 세 가지 활동이 본인에게 각각 어떤 의미인가.
“제일 중요한 건 2PM 활동이죠. 솔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펼칠 수 있는 개인 영역이고요. 배우로서의 활동도 너무나 소중해요. 그렇지만 뿌리는 2PM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그룹이 욕 먹지 않았으면, 나로 인해 금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내가 욕 먹는 건 괜찮지만 2PM의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