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위대한 전투들이 벌어질 테니 준비하라. 우리는 백전백승하게 될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지지자들과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 100일간의 기록은 매우 흥분되고 또 매우 생산적이었다”면서 “나는 이제 다가오는 위대한 싸움에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현장의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트럼프의 ‘자화자찬’과 ‘과대망상’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란 비난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대선 당시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다시 등장한 이날 행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의 성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치적’을 일일이 늘어놨다.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인준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키스톤XL 송유관 승인, 환경·에너지 관련 규제 완화, 안보 조치 강화 등이 그가 주장한 주요 성과였다.
대선 당시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다시 등장한 이날 행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드는 민주당을 비난하며 결국엔 자신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단 취임 90일 자평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언론(가짜 뉴스)이 우리 성과를 언급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28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강력한 국경과 낙관주의를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 “나의 취임 첫 100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셀프 극찬’을 이어갔다.
언론을 향한 특유의 노골적 적개심도 다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CNN과 MSNBC 등 가짜 뉴스들은 오늘 우리와 함께하고 싶었겠지만, 매우 지겨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 발이 묶였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이어 “할리우드 배우들과 워싱턴 언론계 인사들은 호텔 방에서 서로를 위안하고 있을 것”이라며 “워싱턴의 ‘오물(swamp)’들로부터 161㎞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 더 많고 더 나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고 조롱했다.
그는 “내년에도 (출입 기자단 만찬이 아닌) 이곳에 올 것”이라며 “나의 유일한 충성을 우리 멋진 국민에게 바친다”고 덧붙였다. 마치 대선 유세 때와 같은 자극적 연설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펜실베이니아는 지난해 대선에서 1988년 이래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를 선택한 곳이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만의’ 지지자들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는 동안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백악관 없는’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을 가졌다. 대통령을 위시해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물론 초청받은 백악관 직원들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약 100년에 이르는 연례만찬 역사 상 대통령이 불참한 전례는 두 차례뿐이었다. ‘워터게이트'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피격 사건으로 폐에서 총탄을 빼내는 수술을 받은 뒤 회복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바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 이래 36년 만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1921년부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기자단, 할리우드 스타 등을 대거 초청해 연례 만찬을 주최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앞서 본인 트위터를 통해 “올해 열리는 백악관 출입기자단과의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다. 모두들 좋은 시간 갖길 바란다”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불참을 선언했다.
트럼프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기 위해 ‘수정헌법 1조(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의 언론 역할’을 주제로 정한 이날 만찬에서 연사로 나선 코미디언 하산 민하지는 “트럼프는 최고사령관(commander-in-chief)이 아닌 최고거짓말쟁이(liar-in-chief)”라고 비꼬아 좌중의 큰 웃음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민하지는 이어 “우리나라 지도자는 이 자리에 없다. 모스크바에 살기 때문”이라며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을 풍자한 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골프 치기를 바라야 한다. 딴 데 신경이 팔릴수록 북한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출입 기자단 간사인 제프 메이슨 로이터통신 기자는 “우리는 가짜 뉴스가 아니고, 망해가는 뉴스 조직도 아니고, 미국인의 적도 아니다”라고 말해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낙마시킨 워터게이트 특종의 주인공 밥 우드워드는 “분위기가 어떻든 우린 끈기 있게 계속해야 한다”면서 “언론이 안주하면 민주주의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터게이트 보도를 함께한 칼 번스타인도 “우리는 판사도, 입법자도 아닌 기자들”이라며 “우리의 일은 확보할 수 있는 최상의 진실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때는 더욱 그렇다”고 후배 기자들을 독려했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취임 100일에 전반적으로 냉소적이었다. 트럼프로부터 “망해가는 언론사이자 부정직한 사람들”이란 비난을 받은 뉴욕타임스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나온 100일간의 잡음'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지난 100일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정책에 대한 무지로 점철됐다고 일축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부터 30여 년간 백악관 보좌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교수는 이날 CNN에 출연해 트럼프의 취임 100일 연설에 대해 “내가 들은 현직 대통령의 연설 중 가장 분열적인 연설이었다”는 혹평을 내놨다.
[숫자로 본 트럼프의 100일]
0: 방문한 외국 국가 수
5: 워싱턴DC의 반트럼프 시위 횟수
12: 50개 주(州) 가운데 방문한 주 숫자
16: 초청한 해외 정상
19: 골프를 친 날
22: 경영계와 가진 회동 횟수
28: 행정명령 수
31: 자신 소유의 부동산 방문 횟수
42: 국정 지지도(%)
508: 트위터 글 게재 횟수
13,000,000: 2020년 재선을 위해 거둔 정치자금(달러)
<자료: 폴리티코>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