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음악으로 넘어선 장애

입력 2017-04-28 16:36 수정 2017-05-01 10:52
지난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 5층에 들어서자 갖가지 색깔의 크레파스로 적힌 감사 메시지들이 눈에 띄었다. ‘첼로 다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멋진 연주 들려드릴게요.’ 지난해 12월 후원 기업이 사정상 지원을 중단하면서 해체 위기를 맞았던 발달장애인 첼로앙상블이 후원자들을 위해 감사콘서트를 마련한 것이다.


공연을 앞둔 지하 대기실은 단원들과 학부모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한 단원의 어머니와 이야길 나누면서 이날 콘서트가 얼마나 감격스런 무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단원이 된 지 2년여 만에 첼로 합주를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기적을 체험했죠.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희망을 발견했을 때 앙상블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온몸에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날로 주변 성도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릴레이를 펼쳤습니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들로 구성된 첼로앙상블은 5년 전 출발선에 설 때부터 기적 같은 일들을 겪어왔다. 지휘를 맡은 음악감독은 “단원 선발 오디션이 열린 날, 첼로 현을 잡을 수 있는 아이가 한손에 꼽을 정도였다”면서 “정신없이 북을 치거나 춤을 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제대로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선생님이 점이분음표를 설명하기 위해 “1이랑 2랑 더하면 몇이에요”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1”이라고 대답하던,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함께 바라보는 데만도 수십일이 걸렸던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조금씩 변해갔다. 한 단원이 보여 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피지카토 폴카’ 악보엔 강조를 뜻하는 빨간색 사인펜 표시, 곳곳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둔 ‘힘 조금’ ‘한 번만 올리기’ 문구 등이 빼곡했다. 한 단원의 어머니는 “수만번 현을 켜는 동안 눈과 귀, 손, 몸이 첼로와 하나 되게 하기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가 악보에 담긴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20명의 단원들은 이날 7곡의 합주를 선보이며 음악을 통한 기적을 보여줬다. 장애인들의 연주는 부모의 마음에도 희망을 싹틔웠다. 연주를 마친 뒤 무대에 오른 한 어머니는 지나 온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편지에 담아 아들에게 전했다.

“몇 해 전만 해도 틈만 나면 꽃을 꺾으려고 없어지는 너를 감당할 길이 없어 혼내고 매를 들었었지. 그때 엄마는 꽃 피는 봄이 너무 싫었단다. 어느 날엔가 사라진 너를 찾아 길에서 혼을 내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엄마를 붙잡으셨어. ‘어떤 자식이든 쉽게 키워지는 자식은 없다’며 가시더라. 미련한 엄마는 창피함에 눈물만 흘렸단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너의 장애를 인정하기 싫어서 세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나봐. 그런데 엄마가 두려워하고 있는 사이 우리 아들은 ‘첼로’라는 세상에 나와 의젓하게 성장해 있더구나. 친구들과 합주하면서 밝게 웃는 네 모습을 볼 때면 예전 그 아이 맞나 싶단다. 오늘 씩씩한 모습으로 잘한 것처럼 내일은 더 잘할 거라 믿는다. 사랑해.”

음악은 스스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장애인들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기뻐.” “좋아요.” “첼로 사랑해.” 기적 같은 일 앞에서 발달장애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소감은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무대와 환한 웃음에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각자의 마음에 새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