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눈물의 연주, 발달장애인 첼로앙상블… ‘날개, 꽃길만 걷자’

입력 2017-04-19 13:36 수정 2017-04-19 16:24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첼로앙상블 ‘날개’ 단원들이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후원자들을 위한 합주를 펼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음센터 5층에 들어서자 갖가지 색깔의 크레파스로 적힌 감사 메시지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첼로 다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멋진 연주 들려드릴게요.’ 

지난해 12월 후원 기업이 사정상 지원을 중단하면서 해체 위기를 맞았던 발달장애인 첼로앙상블이 후원자들을 위해 감사콘서트를 마련한 것이다. 공연 이름은 ‘날개, 꽃길만 걷자’. 첼로앙상블 ‘날개’ 단원들의 연주가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날개’ 단원들이 크레파스로 적은 감사 메시지가 콘서트장 입구에 부착돼 있다. 밀알복지재단

리허설 후 만난 황교진(15·자폐성 장애 1급)군 어머니 박희영(40)씨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교진이가 단원이 된 지 2년여 만에 합주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기적을 체험했다”고 했다. 박씨는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희망을 발견했을 때 ‘날개’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성도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릴레이를 펼쳤다”고 회상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유지영(12·자폐성 장애 2급)양이 홀로 무대에 올랐다. 준비한 곡은 바하의 미뉴에트 3번. 잠시 숨을 고른 지영양은 떨리는 손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공연장에 퍼졌다. 때론 음이 끊기기도 하고 속도가 느려졌다 빨라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합주하던 피아니스트 국선영(47·차지우 단원 어머니)씨는 완급을 조절하며 능숙하게 걸음을 맞췄다. 연주를 마친 지영양이 첼로에서 활을 떼자 객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오새란 음악감독(오른쪽 첫 번째)이 첼로앙상블 '날개'의 연습과정과 단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지휘자 오새란(37) 음악감독은 “오디션 당시 지영이는 가장 선발을 고민했던 단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어증을 앓던 지영이는 세 살 때부터 입을 닫았던 아이였지만 첼로를 잡고 나서 입을 열었고 지금은 교회에서 대표기도도 한다”며 감격해했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지난 4개월은 음악을 통해 자립의 꿈을 키워왔던 발달장애우와 가족들에게 큰 시련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상임대표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날개’의 꿈을 응원해 준 후원자들과 연간 1억원이 소요되는 운영비 일체를 지원키로 한 ㈜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 원종규) 덕분에 단원들이 합주를 이어갈 수 있게됐다”며 거듭 감사를 전했다.


이날 20명의 단원들은 리차드 로저스의 ‘Edelweise',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Pizzicato polka' 등 7곡의 연주를 선보였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슈퍼맨 메인 테마’였다. 곡의 길이가 긴데다 리듬이 빠르고 편곡에 변주도 많아서 단원들이 처음 완주했을 때 선생님 부모님과 부둥켜안고 울었던 곡이다. 7분여의 쉴 틈 없는 연주가 이어졌다. 오 감독의 지휘에 따라 20개의 활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쭈뼛쭈뼛하고 산만하던 움직임은 온데간데없이 단원들은 귀를 열고 서로 눈을 맞췄다.

연주를 펼치고 있는 차지우군.

콘서트에서 6곡의 연주를 펼친 차지우(19·지적장애 3급) 군은 어떻게 처음 활을 잡게 됐느냐는 질문에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첼로가 가장 아름다웠다”며 웃었다. 이어 “앞으로 꿈과 희망을 주는 첼리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당차게 말했다. 

지우군 어머니 국씨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자기 시야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보고, 다른 단원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사회화를 위한 첫 발을 뗀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해체 위기를 겪으면서 아이들이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