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민’ 정치영화 징글징글해? 명배우들과 함께라면

입력 2017-04-18 21:30 수정 2017-04-18 21:34
뉴시스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파 배우들의 합. 두 얼굴의 정치인이 펼치는 치밀한 선거전…. 좋은 배우들과 좋은 이야기가 만나면 이런 작품이 나온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개봉하는 영화 ‘특별시민’ 얘기다.

18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특별시민’은 최초의 3선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선거 캠프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태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출마 선언에 나선 변종구는 감동의 연설을 끝마치고 무대 뒤로 내려와 “오늘 이벤트 좋았다”고 만족해한다. 시시각각 낯빛이 변하는 그에게서는 한 치의 진정성도 읽을 수 없다. 변종구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혁수(곽도원)는 실검(실시간 검색어) 1위 만들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남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냉혈한이다.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 변종구 캠프에 합류한 광고전문가 박경(심은경)은 남다른 센스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단숨에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권력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 사이에서 ‘보통의 상식’을 가진 그는 혼란에 휩싸이고 만다.

노련한 베테랑 정치부 기자 정제이(문소리)는 존재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조인다. 변종구와 팽팽하게 경쟁하는 상대후보 양진주(라미란)는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양진주 캠프의 선거 전문가 임민선(류혜영)은 단단하게 소신을 갖고 제 몫을 다한다.


양측이 벌이는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경쟁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씁쓸함을 자아낸다. 겉으로는 “서울을 사랑한다” “시민을 위한다”고 목소리 높이지만 실상은 권력욕에 휩싸인 화신들일 뿐. 모든 장막을 거둬내고 제대로 된 인물을 가려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지긋하게 스며든다.

개봉(오는 26일) 시기가 대선 정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3년 전부터 기획된 작품이기에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새 지도자 선출에 나서는 국민들에게 한번쯤 곱씹어볼만한 의미를 던진다.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인제 감독은 “거대한 권력과 그 권력을 얻기 위한 욕망에 휩싸인 사람들을 그리고자 했다”며 “다만 절망적이고 싶진 않았다.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 다음을 생각해볼 여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기인생 최초로 정치인 역할을 맡아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친 최민식은 “지금껏 살면서 봐온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기억들을 찬찬히 떠올리며 캐릭터를 잡았다. 결론은 ‘말’이었다. 정치인의 흥망성쇠는 전부 말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변종구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집중했다. 상황에 충실하면서 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곽도원이 극 중 연기한 심혁수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검사나 경찰 역 경험이 많은 그는 “심혁수라는 인물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권력욕이었다”며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들과 다르게 잘못된 권력욕에 의해 변질되는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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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호흡에서도 밀리지 않고 제 몫을 해낸 심은경은 “박경이라는 인물 자체로 그려지고 싶은 욕심에 딕션부터 많은 부분 손을 봤다”고 얘기했다. 그는 “그동안 실제 경험을 녹일 수 있거나 캐릭터성이 짙은 연기를 주로 해온 데 반해 이번에는 좀 더 현실성 있게 접근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류혜영은 “민선은 아주 현실적이고 상당한 정치적 내공을 갖고 있는데 결고 자기감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인물”이라며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털어놨다.

시국에 지친 관객들에게 정치영화는 과연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나. 현실도 징글징글한데 돈 주고 극장 와서 또 그런 걸 봐야 하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최민식의 답은 이렇다.

“우리나라 정치 환경을 개선하고 좋은 지도자를 찾기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생각이 ‘지겹다’는 것입니다. 지겨워도 끝을 봐야죠. 결국은 투표를 잘 하자는 겁니다. 잘 뽑으면 좋아지니까요. 이 자그마한 영화로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한다면, 우리 소임을 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소박한 사명감으로 작품에 임했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