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신뢰관계를 이유로 용산 미군기지 내부 오염도 조사 결과를 숨겨오던 환경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부 정보를 시민사회에 공개했다. 발암물질인 벤젠이 허용 기준치의 최대 162배 검출되는 등 오염 정도가 심각했다. 그나마 지하수를 채취한 18곳 중 4곳의 분석 결과가 누락된 정보여서 원본자료 공개가 시급하다는 여론이 크다.
녹색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불평등한한미SOFA개정국민연대(국민연대)는 18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용산 미군기지 내부오염원 1차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환경부가 공개한 14곳 중 가장 오염이 심한 곳은 발암물질인 벤젠이 2.440㎎/L 검출돼 기준치(0.015㎎/L)의 162배를 넘어섰다. 벤젠 검출량이 기준치의 20배를 넘어서는 곳이 4곳이나 됐다.
공개된 자료는 원본이 아니라 누락·가공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조사 지점들을 특정하지 않고, 모두 서울 용산구청 맞은편 주유소를 중심으로 반경 200m 이내에 있다고만 했다. 국민연대는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시민의 알 권리를 가로막는 환경부, 국방부, 외교부는 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환경부는 주한미군사령부와 협의해 3차례에 걸쳐 용산기지 내부 환경조사를 하기로 결정했었다. 이어 지난해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용산기지 내부 18곳에서 지하수를 채취했다.
미군기지 오염 문제는 제기된 지 오래지만 진상조사나 정보공개가 쉽지 않았다. 현재 용산뿐 아니라 부평, 원주 등 26곳의 미군기지가 반환을 앞두고 있다. 민변 권정호 변호사는 “국제 환경법의 원칙은 오염자가 정화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미군의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대법원 제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은 민변이 환경부를 상대로 제기한 용산 내부오염원 1차 조사 결과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환경부의 상고를 기각했다. 미군기지 유류오염 분석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하급심부터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서울시 "오염 정화해 반환하라"
1급 발암물질 벤젠이 허용 기준치 최대 160배를 초과했다는 조사 결과와 관련해, 서울시는 기지 내 환경오염을 모두 정화한 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18일 "최근 시민단체가 미국 국방부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용산 미군기지 내부 환경오염사고 84건에 따르면 기지 내부가 심각하게 오염됐으리라 추정된다"며 "시는 이달 6일 조속한 정화대책 수립 등을 환경부에 강력하게 요청한 바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 시민단체가 발표한 84건을 포함한 모든 오염사고 현황 공개 및 즉시 정화 ▲ 한미 환경공동실무협의회 개최 ▲ 2015∼2016년 실시한 한미 공동 내부 오염원 조사결과 공개 ▲ 반환 전 기지 내 정화 후 온전한 반환 ▲ 국내 환경법 준수 및 SOFA 환경 규정 관련 개정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기지 주변 유류 오염이 발견된 2001년부터 정화작업을 펼쳐오고 있다. 이를 위해 2014년까지 51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동안 국가를 상대로 10여 차례 소송을 벌여 정화비와 소송비용 72억원 모두를 환수받았다. 올해도 용산 미군기지 주변 유류 오염으로 인한 지하수 정화에 5억4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서울시는 "기지 내부 정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용산 미군기지 반환 예정이 올해 말인 것을 고려하면 내부 오염원 정화계획과 부지관리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