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영이가 갑자기 할머니 집에서 곱돌이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곱돌이는 지난해 하늘나라로 갔다. 인영이가 한창 병원생활 중이여서 말해 주지 않았다. 일요일새벽 잠에서 일찍 깼다. 집 컴퓨터에 저장된 10년간의 사진들 속에서 곱돌이를 찾아봤다.
곱돌이는 아내와 결혼하기 6개월 전에 입양했다. 2005년 당시 검찰 출입 중이었는데 퇴근할 때 교대 역 앞 동물병원 유리 사이로 곱돌이를 보고 오는 게 일상이었다. 생후 3개월 정도 됐을 땐 데 형제 중에서 가장 활발했고 개구졌다. 곱돌이를 보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렸다. 그땐 기자 짓을 때려칠 지 심각하게 고민해 법원 앞 김영 편입학원 플래카드에 걸려있는 수의학과 편입자 명단을 심각하게 보고 있기도 했다. 그해 7월 강아지를 무서워한다는 아내를 설득해 곱돌이를 데려왔다.
어릴 적부터 개를 좋아했다. 학창시절 내내 강아지와 한 침대에서 잤고, 대학 자취할 때도 ‘개 아빠’였다. 지금은 없어진 프리챌에 ‘Lonely Dog’ 이란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말마다 혼자 개를 키우는 사람들과 교류도 했다. 개 아빠를 포기한 것은 기자가 되면서였다. 경찰서에서 먹고 자다가 일주일에 한번 집에 오는 수습기자 시절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개를 후배 집으로 입양시켰다. 곱돌이는 그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 견이었다.
곱돌이는 11년 동안 우리가족과 늘 함께했다. 신혼집들이 손님들이 남기고 간 삼겹살 기름을 몰래 ‘원샷’하고 안 먹은 척 입술을 앙다물다가 아빠에게 혼난 적도 있지만, 아내에게 침대 접근 금지명령을 받고도 새벽에 몰래 아빠 옆에 파고들던 내 첫째였다. 곱돌이는 윤영이와 인영이가 애기 때 괴롭혀도 단 한번 으르렁댄 적이 없을 만큼 순했다. 육아휴직 시절에는 유모차에는 윤영이를, 밑 짐칸에는 곱돌이를 태우고 산책 나가는 게 낙이었다. 곱돌이는 두 딸의 태교여행부터 인영이가 아플 때까지 모든 것을 지켜봤다.
곱돌이는 나도 아내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할 때 처가로 보내졌다. 베이비시터를 찾는데 강아지까지 보겠다는 보모는 찾기 힘들었다. 그 이후로도 곱돌이는 자주 처가와 우리 집을 오갔다. 자기를 보냈다고 처음엔 삐졌던 것 같았지만 이내 우리 집에 오면 아빠와 엄마와 두 동생들을 핥아주기 바빴다. 물론 장인 장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곱돌이가 피부병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다. 서울대 동물병원까지 다니며 온갖 약을 써봤지만 잘 낫지 않았다. 말년엔 털이 듬성듬성 빠졌고 속병도 들었다. 곱돌이가 급속히 안 좋아졌을 때 인영이도 아팠다. 중간 중간 아내를 통해 곱돌이가 오늘 내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이내 잊었다. 곱돌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난해 이맘 때였다. 그때는 인영이 걱정에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다.
인영이의 마음속에는 아직 곱돌이가 살아있다. 할머니한테 다음에는 곱돌이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한다. 주말 가까운 공주산성에 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을 갔다. 강아지와 함께 온 가족이 보였고 잠시나마 곱돌이를 떠올렸다. 참 무정한 아빠다. 곱돌이 생일은 5월1일이다. 윤영이가 태어나기 전처럼 올해에는 생일케이크로 곱돌이 생일을 축하해줘야겠다.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