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떻게 보셨어요?”
배우 김래원(36)은 인터뷰 테이블에 앉자마자 취재진을 향해 먼저 질문을 건넸다. “재미있게 봤다”는 대답에도 “정말이냐”고 재차 되물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매번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아요.”
그의 우려와 달리 영화 ‘프리즌’은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는 4주차에 접어들고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손익분기점(215만명)은 이미 뛰어넘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 280만명(영화진흥위원회·15일 발표)을 불러 모았다.
‘프리즌’은 권력과의 뒷거래로 패권을 장악한 실세 익호(한석규)가 지배하는 교도소 안 모습을 비춘다. 돈과 권력을 향한 추악한 욕망이 뒤엉킨 그곳에 신참 죄수 유건(김래원)이 들어오면서 변화가 인다. 김래원이 연기한 유건은 다혈질적인 성격의 전직 경찰. 다른 죄수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독기를 표현해야 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인물의 대사나 행동의 목적이 분명했어요. 나현 감독님을 만났을 때 그런 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설명해주시더라고요. ‘내가 좋은 도구로 쓰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저를 더 잘 활용하실 수 있도록 감독님께 여러 의견을 드리기도 했고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래원은 “전체적으로 연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며 “그건 나의 문제도, 누구의 문제도 아니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는 고충은 있었다. 감독님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당초 편집본보다 작품의 톤이 다소 무거워진 데 대해선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몇 차례 머뭇거리다가도, 김래원답게,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숨기지 않았다. “초반 더 웃기고 재미있었던 장면들이 있었는데 음악으로 톤을 많이 눌렀어요. 감독님이 고민 끝에 결정하신 거겠지만 저는 그게 좀 아쉬워요. 뭐,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신 거겠죠.”
무엇보다 절친한 선배이자 ‘낚시 메이트’인 한석규와의 첫 호흡에 크게 만족해했다. 그는 “언젠가는 할 줄 알았는데 드디어 같이 하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도 7~8년 전부터 가끔 얘기하셨어요. ‘우리는 언제 만나냐.’ 저도 속으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요. ‘진짜 선배님하고 언제 같이 하지?’ 이렇게 기회가 돼서 너무 좋았죠.”
1997년 MBC ‘나’로 데뷔한 김래원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각광을 받았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MBC·2003)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SBS·2004)와 영화 ‘어린신부’(2004) 등을 거치며 스타덤에 올랐고, 지난해 ‘닥터스’(SBS)까지 좋은 반응을 얻으며 명실상부한 ‘로코 킹’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스크린에서는 강렬한 장르물에 많이 도전했다. 다양한 연기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미스터 소크라테스’(2005) ‘해바라기’(2006) ‘강남 1970’(2015) 등에선 남자냄새 물씬 나는 ‘센 연기’를 보여줬다. 이번 ‘프리즌’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연기를 해온 것 같아요. 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옛날엔 어떻게 했나 싶고, 참 부끄럽기도 한데…(웃음). 그냥 자신감 하나로 한 거죠.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정도의 수준도 안됐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좀 더 깊어지고 넓어졌죠. 작품을 보는 눈이나 태도, 마음가짐도 달라졌고요.”
그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이라고. 김래원은 “액션신으로 예를 들면, 예전엔 온몸에 멍이 들고 서너 번씩 기절하기도 했다. ‘해바라기’ 엔딩신을 찍고서는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합리적으로 연기하는 요령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대 루키 때는 열정으로 뛰어든 거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한 거예요. 패기만 가지고…. 지금은 힘을 쓸 때와 절제할 때를 알아요. 감독님께 먼저 ‘이렇게 해야 저를 잘 쓰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게 됐고요.”
배우로 살아오면서 성격도 조금씩 변했다. 웬만큼 감정기복이 있고 예민해졌다. 계절을 타기도 한다. 스스로 “피곤한 성격”이라고 인정한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너 원래는 안 그랬는데….’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요. 뭐 하나에 굉장히 집착하기도 하고요. 배우로서는 좋은 거죠.”
그래서 평소 낚시를 즐긴다. 김래원은 “낚시를 하는 동안에는 ‘고기를 잡겠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잡념이 사라진다”며 “운동을 해도 효과가 있지만 난 고기를 잡는 게 더 재미있나 보다”며 웃었다.
어느덧 데뷔 20주년. 이 말을 건네자 김래원은 펄쩍 뛰었다. “되도록 그 얘기를 피하고 싶은데 항상 따라다녀요. 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냥 ‘20년 했다’고 하면 나이가 더 많아 보이잖아요(웃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제가 고등학생 때 데뷔한 걸 모를 테니까.”
연륜 만큼의 여유가 생긴 건 확실해보였다. ‘펀치’(SBS·2014)로 연기대상을 타지 못한 데 대해 여전히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다는 말에 김래원은 “그게 뭐 중요한가. (시청자들의) 그런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조바심을 내기보다) 그냥 흐름에 맞춰가고 있어요. 혼자 고집부리는 건 바보 같고 미련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멋 내는 연기보다 인간적이고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진정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