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티드 피해자 신상 턴 해외 언론… "뭣이 중헌디"

입력 2017-04-13 14:48 수정 2017-04-13 16:29
유튜브 영상 캡쳐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기에서 강제로 끌려나갔던 동양인 피해 승객의 '과거'가 서구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미국 매체를 비롯해 각종 외신이 그의 신상 정보를 폭로하면서 범죄 기록까지 세상에 공개됐다. 

"알고 보면 그 피해자도 사실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보도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4311편 여객기에서 오버부킹으로 승객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이 과정에서 폭력에 가까운 방식으로 승객을 끌어내리는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유나이티드항공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피해 남성이 동양계여서 인종차별 문제로 번졌다.

피해자 데이비드 다오(69)씨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폐 전문 의사 자격을 갖고 있다. 미 켄터키주 루이빌 인근에서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지난 10일 "다오씨가 과거에 진료하던 남성 환자와 성관계를 가졌으며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한 약물을 불법 제공하기도 했다"면서 그의 범죄 전력을 보도했다.

데일리메일은 "다오씨는 2003년 마약 관련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그 해 의사면허가 중지됐다. 현재 갖고 있는 의사면허는 2015년 재취득한 것"이라며 "그는 하딘기념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환자에게 불만을 들었던 의사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상 털기'식 기사가 미국 유력 언론을 통해서도 계속되자 현지 네티즌들은 "이런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 댓글 등에는 "가해자는 놔두고 왜 피해자의 과거를 들추는 거냐" "왜 이런 보도를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에 지은 죄가 있다 해서 인종차별을 받아도 된다는 건가?" "과거 행동이 좋지 않았다고 기내에서 받은 부당 대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다오씨의 기내 모습이 담긴 새로운 영상도 공개됐다. "승객이 호전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던 유나이티드항공 CEO의 설명과 달리 그는 경호원에게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뉴욕포스트 등이 13일 보도한 영상은 피해 승객 데이비드 다오씨가 비행기 좌석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하다 출동한 경호원과 정중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담겼다. 

1분10초가량의 영상에서 다오씨는 좌석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그는 "나는 내과의사이고, 내일 8시에 진료가 잡혀 있다"고 말한다. 이어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경호원의 말에 "유나이티드항공을 상대로 소송할 것"이라며 "안 내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리느니)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소리치거나 흥분하는 모습은 없었다. 당시 다오씨는 변호사와 통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을 처음 올린 여성 승객 조아 그리핀 커밍스는 페이스북에 "남성 승객이 화를 내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며 "그는 단지 집에 가서 내일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다오씨를 두둔했다.

다오씨는 거물 변호사를 선임하며 항공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개인 상해 소송 권위자인 토머스 데메트리오(70) 변호사와 기업 상대 소송 전문 스티븐 골란(56) 변호사에게 소송 대리를 맡겼다. 

시카고 변호사협회장을 지낸 데메트리오 변호사는 법률 매체가 선정한 미국 톱10 변호사에 오르기도 했으며 관련 소송에서 성사시킨 합의금 규모가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단은 일리노이주 법원에 항공기 안팎의 모든 감시카메라 영상, 조종석 음성기록, 탑승객 및 승무원 명단 등 이번 사건 관련 자료들에 대해 증거 보존 신청을 했다.

현지에선 다오 박사가 명예훼손과 업무상 손실, 본인과 가족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소송 액수는 최소 수백만달러에서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오스카 무노즈 최고경영자(CEO)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재차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승무원들이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한 시스템이 문제였다”며 사태의 원인을 승무원과 시스템 탓으로 돌렸다.

한편 사건 당시 항공기에 탑승했던 고교 교사 제이슨 파월은 시카고트리뷴에 기고한 목격담에서 “학생 7명과 함께 봄방학 답사를 다녀오는 길이어서 학생들까지 이 부당한 처사를 목격했다”며 “초과 예약을 이유로 좌석포기를 요구하고, 경찰이 웃음을 보이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승객을 끌고 나간 상황 모두가 혐오스럽기만 했다”고 전했다.

최민우 인턴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