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의 ‘꺼림칙한’ 밀월이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한반도 위기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북한 문제 최종 파트너가 일본이 아니냐는 인상마저 들 정도다. 양국 간 ‘찰떡 공조’ 속에 재무장을 꿈꾸는 일본이 은근히 한반도 위기를 부채질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자신들과 사전협의를 해 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미국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도 미국이 즉각적인 군사행동에 돌입하지 않고, 양국 간 협의를 거친 뒤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히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취임 후 첫 군사행동인 시리아 폭격을 통해 북한에 대한 모종의 ‘암시’를 전하려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의 고위 당국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실무회담을 하고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의견을 조율해 왔다. 일본 측 실무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에 압력을 넣어 대북 제재에 협력토록 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정하면서도 ‘밀리터리 옵션(군사행동)’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본에 누차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 기능하지 않는다면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단 방침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교도통신도 복수의 양국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한 미·일 고위 관료 협의에서 “중국의 대응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strike)’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사전협의’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스가 장관은 이번달 열린 미·일 고위급 협의에서 미국 측이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내용과 일본 측이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때 사전협의를 요청했다는 등의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명쾌하게 부인해둔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한반도 주변으로 항로를 선회한 미국의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 항모 전단과의 공동훈련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12일 일본 방위성이 해상자위대 함정과 칼빈슨 항모 전단과의 공동훈련을 펼치기 위해 미 해군과 조정을 시작했으며 훈련 장소로 규슈(九州) 서쪽 해역과 동중국해를 물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공동훈련에 대한 일본 총리관저의 승인은 이미 떨어진 상황이며 일본 정부 관계자가 “미·일 공동 행동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훈련에선 자위대의 평시 미군 함정 호위 등이 포함된 안보법 상의 임무는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에 정박 중이던 칼빈슨 항모 전단은 원래 호주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갑작스럽게 기수를 한반도 방향으로 돌렸다. 일본 인근 해역엔 이번 달 말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해상자위대 호위함 2척은 지난달 7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려던 칼빈슨 항모 전단과 바시 섬(대만과 필리핀 사이에 위치) 해역 주변에서 합류해 같은 달 10일까지 오키나와(沖繩) 본섬과 미야코지마(宮古島) 사이를 통과해 규슈 서쪽 해역까지 항행하는 훈련을 펼쳤고, 지난달 27~29일에도 해상자위대 호위함 5척이 칼빈슨호와 동중국해에서 공동훈련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로 더욱 공고해진 미·일 양국의 외교·안보 공조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역효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쿄신문도 이날 “해상자위대와 칼빈슨 전단의 공동훈련은 군사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을 양국이 함께 견제한다는 목적이 있지만, 북한의 반발로 군사적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오히려 한반도 정보에 주의하라며 위기론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스가 장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일본 국민의 피난이 필요한 경우까지 상정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퇴거시켜야 할 경우를 상정해 끊임없이 필요한 준비와 검토를 해서 어떤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의 태세를 취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항상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최대 책무”라고 강조했다.
외무성도 11일 자체 운영하는 ‘해외안전 홈페이지’에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반복하고 있으므로 한반도 정세에 관한 정보에 계속 주의해 달라”면서 “한국에 머물고 있거나 한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최신 정보에 주의해 달라”는 안내문을 올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극도로 고조된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가 다른 나라에 탄약 등의 군용품을 지원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국가를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1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시행된 안보법을 반영해 기존 ACSA를 개정하거나 신규 체결한 내용을 이번주 중으로 국회에서 승인 받을 예정이다. 안보법 시행으로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을 경우’로만 제한됐던 탄약 제공 등은 향후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직접 공격이 아니더라도 제3국에 대한 공격이 일본 존립을 위협할 명백한 위험이 있거나 유엔 결의를 거쳐 국제사회가 공동 대처하는 사태에서도 자위대가 탄약과 연료, 식품 등의 군수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야당에선 ACSA의 적용 범위가 모호해 외국 군대의 무력행사에 일본이 동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각국과의 양국 관계와 협력, 구체적 수요 등을 감안해 필요한 협정 체결을 추진해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프랑스, 캐나다와 ACSA 협상을 진행 중이며 뉴질랜드와도 관련 연구를 검토하기로 한 상황이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한국과도 “적절한 시기에 (ACSA 협상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만큼 협의해 가겠다”고 언급해 한·일 양국 간 또 다른 외교 갈등의 여지를 남겼다. 앞서 지난 2013년 12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한빛부대가 일본 육상자위대로부터 소총 실탄 1만발을 빌려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북한 문제를 빌미로 군사적 기지개를 펴고 있는 반성 없는 전범국가의 행태와 ‘총알 빌려주고 싶어 안달 난 일본’의 모습이 ‘전쟁 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