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월호가 1089일만에 뭍에 올라온 가운데 연극계에선 세월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연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한국 연극계는 세월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 1월 서울 광화문 광장 블랙텐트에서 공연된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씻금’은 올해 세월호 연극 물결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작품이다. ‘씻금’은 원래 이윤택이 지난 2010년 전남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세월호 희생자들, 특히 미수습자들의 넋을 달래는 장면이 추가됐다.
4월에는 세월호 연극들이 유난히 많다. 극단 신작로와 극단 감동프로젝트가 공동으로 제작한 연극 ‘그렇게 산을 넘는다’(5~8일 아라리오뮤지엄 소극장),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내 아이에게’(10~16일 성북마을극장)가 공연된다. 두 작품은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를 소재로 했다. 예술공동체 단디는 3월 연극 ‘달맞이’에 이어 4월 ‘볕드는 집’(20~24일 소극장 혜화당)까지 세월호 추모 연극을 잇따라 공연한다. 두 작품은 아이의 실종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5월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서 열리는 안산거리극축제(5~7일 안산 일대)를 주목해야 한다. 안산거리극축제는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부터 세월호와 관련된 고민을 축제 프로그램 안에 담았다. 2015년엔 치유, 2016년엔 회복 그리고 올해는 희망을 주제로 삼았다.
올해도 3편이 세월호를 소재로 한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2015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안산순례길’(총연출 윤한솔)이다. ‘안산순례길’은 세월호 참사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사유하기 위해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안산이라는 도시를 함께 걷는 이동형 공연이다. 총연출을 맡은 윤한솔을 비롯해 참가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또 7월 6일~8월 13일엔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들의 기획초청 시리즈 ‘세월호’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연극계의 기대를 모으는 신인들이 모인 혜화동 6기 동인들은 2015년부터 세월호를 테마로 기획 공연을 올려왔다. 올해는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검은 입김의 신’(고연옥 작·부새롬 연출), ‘할미꽃단란주점 할머니가 메론씨를 준다고 했어요’(윤미현 작·윤한솔 연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구자혜 작·연출) 등 8편이 예정돼 있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작품이 세월호를 다양한 방식으로 담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간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한편 국가에 문제를 제기하는 직접적인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좀더 연극적인 미학과 언어 속에서 세월호를 다루려는 간접적인 방식이 눈에 띈다. 연극 ‘비포 애프터’ ‘그녀를 말해요’에서 세월호 문제를 깊이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 연출가 이경성은 “그동안은 세월호에 대해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기가 어려웠고, 그것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면서 “참사 3년째인 올해는 3년상을 치르는 것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세월호를 다루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 언어가 적당한지 찾고 있는 중이다”고 피력했다.
올해 세월호 참사 3주기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몰락 등 시국이 바뀐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안산순례길’의 고주영 프로듀서는 “세월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채감을 가지고 있고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동안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후일담 형식으로 너도나도 쉽게 다뤄서는 안된다고 본다”면서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바뀐 것은 없다. 그래서 젊은 예술가들은 세월호 문제를 좀더 직시하는 작품을 만들려는 생각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관련 연극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피해자를 넘어 한국인의 외상이 되어가고 있으며 도덕적 보편성의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월호를 소재로 ‘노란 봉투’ 등을 썼던 극작가 이양구는 “홀로코스트가 유태인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외상이 된 것처럼 세월호는 이제 한국 사회 전체의 상처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면서 “홀로코스트가 수십년에 걸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데는 영화 등 예술의 역할이 컸다. 한국 연극계는 세월호와 관련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경우가 유난히 많아서 유가족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한층 받아들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월호는 이제 한국인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됐으며, 한국 연극계는 세월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