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국 정권 축출史…북한, 16번째 타깃 될까

입력 2017-04-12 08:49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몰아낸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주도한 15번째 ‘정권 축출(Regime Change)’ 시도였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53년 이란을 시작으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까지 15차례 외국 정권의 존폐를 좌우했다. 9차례는 직접 무력을 사용했고 나머지는 쿠데타를 조장하거나 반군을 지원하며 개입했다.

미국에서 이번엔 ‘포스트 김정은’이란 말이 나왔다. 김정은 제거 이후, 그러니까 김정은 정권 축출 이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미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공화당 소속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김정은이 없어진 뒤 누가 그 자리에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반도 비핵화뿐 아니라 포스트 김정은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 정권 교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모든 옵션을 검토한다”는 말이 백악관 고위 인사들에게서 연일 언급되고 있다. 정권 축출의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미국이 과연 북한에도 같은 시도를 할지, 북한이 미국의 16번째 정권 축출 대상이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외국 정권 축출 명분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고 유일 강국이 된 뒤로는 인권 보호과 민주주의 수호가 명분으로 활용됐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테러와의 전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대부분 석유 자원, 운하 이권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미국은 정권을 전복시킬 때마다 민주국가가 수립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경우는 20%도 안 된다. 미국의 타깃이 되고도 권력을 굳건히 유지한 사람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거의 유일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1950∼70년대=모하마드 모사데그 이란 대통령은 53년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조종한 쿠데타로 실각했다. 뒤이어 들어선 친미 성향의 팔라비 정권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미국을 대신해 소련의 중동 진출을 견제했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아프리카 콩고의 파트리스 루뭄바 초대 총리도 60년 미국이 조장한 쿠데타로 암살됐다.

공산세력과 반미 정권이 앞마당에 발붙이도록 놔둘 수 없다며 미국은 중남미에서 5차례나 정권 축출을 시도했다. 민족주의자인 야코보 아르벤스 과테말라 대통령과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은 각각 54년과 73년 CIA가 조종한 쿠데타로 물러났다.

쿠바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후안 보쉬 도미니카 공화국 대통령과 마우리스 비숍 그레나다 총리는 65년과 83년 미국의 무력 침공에 권력을 잃었다. 61년 쿠바 침공은 실패했지만 이후 단행된 경제제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권이 축출된 중남미 국가는 대부분 민주주의 대신 내전을 겪었고 칠레에서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았다.

◇1980년대=그레나다를 포함해 4차례 정권 축출이 있었다. 86년에는 필리핀과 리비아에서 정권 교체를 시도했지만 방법은 달랐다. 미국은 필리핀 반정부 시위를 은밀히 독려하고 대통령 선거를 촉구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실각을 유도했다. 반면 리비아에는 폭격을 퍼부었다. 아랍 민족주의로 무장한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정권에 큰 타격을 줬다.

89년의 파나마는 지금의 이라크 전쟁과 가장 흡사하다. 후세인 대통령에게 석유가 있다면 당시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은 파나마 운하를 갖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직결된 상황. 축출 대상이 되기 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전쟁 전 망명 제안을 받은 점이 닮았지만 두 사람 모두 거절해 공격당했다. 

미국은 파나마를 점령한 뒤 노리에가 장군을 체포해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 법정에 세웠다. 이후 파나마에는 비교적 민주적이지만 철저히 미국 영향권에 종속된 정권이 이어졌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1990년대 이후=92년 소말리아,94년 아이티,99년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인종 청소 등 반인권적 정권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정권 축출이 진행됐다. 소말리아에서 미군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이끌고 진격했으나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장군을 체포하지는 못한 채 1년 만에 철수했고,아이티는 군사 정권이 침공 직전 와해돼 무혈 입성했다.

미군이 주도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군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인종 청소를 저지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했다. 밀로셰비치는 2000년 10월 반정부 시위로 축출된 뒤 전범 재판을 받았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탈레반 정권이 축출됐다. 미국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내세워 새 정부를 수립케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