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화려해야 할 전성기에 김연아(27)의 그늘에서 언제나 쓸쓸히 눈물을 흘렸던 동갑내기 라이벌이 있었다. 일본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아사다 마오. 제갈공명을 만나지 않았으면 전장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았을 오나라 장수 주유처럼 아사다는 영원한 도전자였고, 비운의 2인자였다. 김연아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아사다에게 비극이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 국제빙상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 랭킹 2위. 아사다는 언제나 정상 바로 아래에 있었다. 가장 밝게 빛나는 타이틀은 늘 김연아의 몫이었다. 아사다는 김연아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한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20세를 전후로 불과 5년 남짓 찾아오는 전성기를 보냈다.
주니어 시절만 해도 적수가 없는 절대강자였다. 아사다는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였다. 16세였던 2004-2005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달성했다. 아사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 불모지 한국에서 조용하게 성장하고 있던 김연아가 아사다와 같은 시즌 시니어로 데뷔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김연아는 출전한 그랑프리 시리즈마다 금메달을 쓸어 담고 아사다를 추격했다. 세계 최고점까지 경신하며 승승장구했다. 김연아의 가파른 상승세는 동아시아 피겨스케이팅 최강 일본이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전이었다.
김연아는 시니어 데뷔 시즌부터 그랑프리 파이널 2연패를 달성했다. 2007-2008 시즌부터는 적수가 없는 세계 최강자로 올라섰다. 아사다가 2인자로 밀린 건 그때부터다. 2년 뒤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의 주인은 김연아였다. 아사다는 시상대 두 번째 자리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김연아에게 맞설 무기로 트리플 악셀을 끊임없이 연마했다. 트리플 악셀은 3회전 반을 도는 기술이다. 여자 싱글에서는 고난도 기술로 통한다. 아사다는 번번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고집스럽게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고집이 결국 아사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아사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를 받은 연기력, 트리플 악셀에 실패할 경우 감점을 만회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지 못했다. 김연아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는 입상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김연아는 소치동계올림픽 은메달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아사다는 은반에 남았다. 이미 전성기가 꺾였고 김연아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지만 아사다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과 과제가 있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트리플 악셀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긴 아사다에게 트리플 악셀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실패 횟수는 갈수록 많아졌다. 번번이 실패하는 트리플 악셀은 이제 감점의 요인이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점수와 순위는 하락했다. 왼쪽 무릎까지 다치면서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그렇게 2016-2017 시즌을 마치고 피겨스케이팅 인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아사다는 지난 10일 블로그에 “은퇴를 결정했다. 21년 동안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살면서 기쁨도 많았지만 갈등 역시 많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적었다.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했던 피겨스케이팅 인생과 다르게 작별인사는 간결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