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州의 교육공공성 실험… 등록금의 굴레 벗나

입력 2017-04-11 17:42 수정 2017-04-11 17:46
뉴욕 브루클린 칼리지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AP뉴시스]

북구의 복지천국이나 남미 좌파 정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대학 무상교육이 미국 뉴욕주에서도 본격적으로 현실화된다. 대학으로 확대된 교육 공공성 실험이 대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학비 부담을 끝낼 것이란 기대감 속에 향후 미국 대학 전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뉴욕주가 올해 가을학기부터 중산층 이하 가정을 대상으로 공립대학 등록금을 전액 면제키로 했다. 이는 기존의 학자금 지원제도를 보완해 완전 무상 대학교육을 현실화한 것으로 ‘엑셀시어(Excelsior·뉴욕주의 표어로 ‘보다 높은 것을 목표로’란 뜻) 장학금’으로 명명됐다. 이번 조치는 미국 4년제 대학에 처음 적용되는 것으로 뉴욕주립대와 뉴욕시립대 등 뉴욕주의 공립대학에서 시행된다.

  파격적인 지원책의 대상은 연간소득 10만 달러(약 1억1470만원) 이하의 뉴욕주 거주 가정이다. 뉴욕주 정부는 대학생 자녀가 있는 주민 중 약 80%가 올해부터 등록금 면제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내년에 뉴욕주립대에 입학하는 신입생 가정은 4년 등록금에 해당하는 2만6000달러(약 2980만원)의 부담을 덜게 된 셈이다. 연간소득 한도 또한 2018년에 11만 달러, 2019년엔 12만5000달러까지 단계적으로 올려 향후 더 많은 주민들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등록금 전면 지원 예산이 반영된 1530억 달러(약 175조3000억원) 규모의 2017~18 회계연도 뉴욕주 잠정 예산안도 지난 8일과 9일 주의회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최종 승인됐다. 주내 사립대 등록금 지원 예산 1900만 달러(약 217억 7000만원)도 이번 예산안에 포함돼 전체 교육예산은 지난해 대비 4.4% 늘어났다.

  뉴욕주의 대학 무상교육은 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가 제안하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힘을 실으면서 빛을 보게 됐다. 쿠오모는 미국 대학생들이 졸업 후 3만 달러 이상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변화를 주장해왔고,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진보 돌풍’을 일으켰던 샌더스 의원은 가계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전국 국·공립대 등록금 면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샌더스는 지난 3일에도 성명을 통해 “미국의 고등교육은 특정인의 특권이 아닌, 모든 이들의 권리가 돼야 한다”며 교육 공공성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획기적인 지원책에 따라붙은 한 가지 전제조건이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쿠오모 주지사는 10일 “주의회 예산통과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학비 혜택을 받은 학생은 졸업 후 수혜기간 만큼 뉴욕주에서 살아야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발표했다. 주지사는 “혜택을 받은 학생이 뉴욕주를 떠나는 것을 막아 학생에 대한 주 정부의 교육투자금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무상교육을 반겼던 대학생들 사이에선 학비의 ‘볼모’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원래 쿠오모 지사가 발표했던 등록금 지원 계획안엔 의무 거주 연한에 대한 단서가 없었지만 주의회 예산안 최종 협의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해당 조건을 밀어붙여 반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단서에 따르면 학비를 지원 받은 학생이 졸업과 함께 다른 주에서 일자리를 얻어 떠날 경우엔 학비가 대출금으로 전환되어 모두 상환해야 하고, 진학을 위해 다른 주로 갈 경우에는 학비를 반납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학원 과정 또는 학위를 마치고 난 뒤엔 뉴욕주로 돌아와야 한다. 군복무를 위해 뉴욕주를 떠날 경우에만 예외로 인정된다.
버니 샌더스(왼쪽) 상원의원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주지사 [버니 샌더스 트위터]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