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남도교회 현장 지킴이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찬송가 407장)
11일 오전 11시 전남 목포시 유달동 목포신항 북문 앞. 컨테이너로 지어진 ‘개신교 기도처’ 앞에서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잔잔한 찬송이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철조망 뒤로 보이는 부두에서는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거치하는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지난 7일 설치된 기도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전남·광주·광주남노회 소속 목회자들 주도로 마련됐는데, 이곳에서 고난주간을 맞아 ‘세월호 그 아픔과 함께 하는 고난절 성찬 예배’가 드려진 것이다.
3년 전인 2014년 4월 17일 전남 진도 팽목항.
“물고기 뱃속의 요나 같은 기적을 보게 하소서….”
세월호 침몰 이튿날, 항구로 달려 나온 진도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했다. 또 다른 무리는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들던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안내와 각종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참사 발생 1092일째.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이어 목포신항에 이르기까지 세월호 유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 곁엔 지역 교회가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었다.
24시간 기도하고 봉사자·지킴이로
“태초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렸어요. 유가족들의 고함과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눈물… 어느 누구도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었죠.”
사고 발생 첫날부터 봉사활동 공식 종료일인 2014년 10월 11일까지 179일 동안 팽목항 봉사현장을 지킨 조원식(진도 신진교회) 목사가 더듬은 기억이다.
당시 전쟁터 같았던 현장을 정리하고, 봉사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이끈 숨은 공신은 진도군교회연합회(진교연·회장 김경은 목사)다. 80여 교회가 활동하는 진교연 소속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1인 다역을 감당해야 했다. 실종자와 유족들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으로 실어 나르는 운전기사로, 심부름꾼으로, 기도회와 예배 집례·봉사자 등으로 동분서주했다.
진도실내체육관 입구와 팽목항 입구에 설치된 봉사부스를 지키는 일도 진도 교회 몫이었다. 잠수부와 실종자 가족·친지, 자원봉사자, 외부 방문객들을 위해 라면과 생수, 속옷 등 식료품과 생필품 박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수시로 기도회도 가졌다.
생전 처음 겪는 국가적 재난의 한복판에 선 그들은 ‘봉사 십계명’까지 만들어 공유했다.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들지 말자’ ‘유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묻는다’… 유가족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포와 해남, 광주 등 인근 지역 교회들도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다.
값진 희생, 인내의 열매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이나 희생자 유족들을 대면하는 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세월호 침몰 다음날 팽목항이랑 체육관을 다섯 번 왕복하면서 구호물품을 지급했다. 쉴 수가 없었다. 세월호 가족을 위해 만분의 일이라도 내가 희생해야 겠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2주도 안 돼 과로와 스트레스로 입원한 고 문명수(진도만나교회) 목사의 병원 진료기록지엔 그의 심적 압박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당시 진교연 회장이었던 문 목사는 입원 5개월여 만에 패혈성 쇼크 증세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다. 진도 지역의 또 다른 목회자와 성도들도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줄줄이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값진 희생 뒤엔 인내의 열매도 있었다. 2014년 10월, 광주기독교연합회(NCC) 대표인 장헌권(광주 서정교회) 목사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수취인은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준석 세월호 선장을 비롯해 선원 15명. 편지 내용은 양심선언을 독려하는 호소였다. 선장을 포함해 5명이 수취 거부를 했을 땐 힘이 쭉 빠졌다.
그런데 그해 11월 4일. 2통의 답장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2016년 숨진 조타수 오용석씨와 조기장 전영준씨였다. 이 가운데 오씨의 편지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월호 2층 화물칸 외벽 일부가 철제구조물이 아닌 천막이었기 때문에 배가 급격하게 기울어 침몰했다’는 내용이었다.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던 이의 양심선언을 장 목사가 이끌어낸 것이다.
지난 3년 간 세월호 가까이서 지낸 현장 목회자들의 소회는 한마음으로 모아진다.
천만선(진도 광석교회) 목사는 “세월호를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아리고 뭔가 맺힌 느낌이 남아 있다”면서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수색을 통해 미수습자 9명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타인의 아픔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감능력이 커진 것 같다”며 “미수습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재찬 장창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