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은 우리 주님 안에서 살던 황금찬 시인을 멀고 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날입니다.
여기 모인 초동 교우, 문인과 문상객, 유족에게 애도를 넘어서는 위로가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황금찬 시인을 1918년 속초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 보릿고개, 혁명, 민주화 물결 등 100년을 사는 동안 고비마다의 아픔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맑은 영혼을 지닌 시를 쓰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강릉농고, 강릉사범에서 동성고등학교까지 반세기 넘도록 모국어로 시의 가락을 뽑아 읊으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수천 편의 시를 쓰면서도 남의 시를 수백 편이나 암송하는 시사랑이 대단하였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단편 하나를 읽고, 우이동 백운대를 바라보며 하루에 시 한 편씩을 썼습니다. 이 국민 시인의 생애는 그대로 시였으며 시가 흐르는 생활이었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문학이고 이야기였습니다.
해변시인학교, TV 교양프로, 시낭송회, 강연, 기독교문인협회 큰 어른으로 시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예술원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고의 시인인 예수의 언어를 좇아 평생을 시와 걸었던 이 동해안 시인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으로 시를 짜고, 파도에 밀려오는 물결로 피리를 불었습니다.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살고, 고결한 인품을 지닌 시의 성자였습니다.
슬프고 애절한 사연을 남몰래 다독이며 속으로만 울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벗할 책이 있고, 한 잔의 차를 마실 수 있으면 됐지 그 외에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시인으로 행복을 찾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초동교회 성가대원으로 주께 영광 돌렸습니다. 60년 넘게 초동교회를 섬기며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는 믿음의 시인이었습니다.
우리 초동 문인들은 예배 후 선생님을 모시고 듣고 배우면서 시의 지경을 넓혀 왔습니다.
찬송가 443장 황금찬 작사, “아침 햇살 비칠 때 주님 얼굴 대하 듯 마음이 즐겁다. 마음에 풍랑이 일어나도 주와 함께 살리라”는 신앙 고백으로 시를 지어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2016년 교회에서의 백수 잔치 때, 꽃 같은 말로 시처럼 답사하셨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할 때 우리 모두는 울었습니다.
황금찬 선생님, 먼 길 안녕히 가십시오. 나중에 우리도 시인이 사는 하늘나라로 따라가겠니다.
한 시대를 황금찬 시인과 함께한 삶이 행복했습니다.
시가 있고 시인이 있는 세상은 언제나 꽃의 고향 같다고 하셨는데, 시인을 보내는 이 아침 성모병원 주변에 일제히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선생님을 환송하는 듯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 발인 예배와 문인장, 화장, 하관까지의 모든 절차에 주님이 함께해 주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의 섭리 안에서 사랑받게 하소서.
이 말씀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진 장로(성서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