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되자 '안철수 바람'이 불고 있다. 몇 주 전만 해도 10% 문턱에 있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경선 과정을 거치며 급상승하더니 단숨에 30%대로 뛰어올랐다. 이렇게 단기간에 치솟은 지지율은 분명 '바람'이 불었음을 말해준다.
2012년 대선에서도 '安風(안풍)'은 불었다. 당시엔 '안철수 현상'이란 말로 불렸다. 대선 전에 열린 서울시장 선거에 그가 출마하려 했을 때 지지율은 단숨에 50%대를 기록했다.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고 두문불출하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정통 야당의 문재인 후보에 맞먹는 지지를 얻었다.
◇안철수가 일으킨 2012년 '안철수 현상'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 두 선거는 모두 안철수 바람이 판을 흔들었다. 그런데 4년이란 시간은 그 바람에 변화를 가져 왔다. 2012년의 안철수 현상과 2017년의 안철수 바람은 조금 다른 요인을 갖고 있다.
4년 전 대선판 등장한 안철수는 정치신인이었다. 사람들은 기성 정치인에게 찾을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고, 이는 '새정치'란 말로 정리됐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꽉 막힌 정치의 답답함을 안철수란 새 얼굴을 통해 풀어보려는 욕구가 작용했다.
50% 지지율을 가진 사람(안철수)이 겨우 5%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박원순)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보여준 안철수 후보에게 당시 유권자들은 '기대'를 품었고, 그 기대가 모여 불어온 바람은 "안철수가 좋아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문재인이 일으킨 2017년 '안철수 바람'
지금 불고 있는 안풍은 조금 다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렇다. 2012년은 '안철수의 등장'이 바람의 진원지였지만, 지금은 '각 당 후보 확정'과 함께 바람이 일었다. 더 정확히는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의 여러 '대안'이 소멸되자 안철수 후보에게 시선이 쏠렸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4년간 계속 정치판에 있었다. '대선주자'란 타이틀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지지율이 낮을 땐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약진할 때를 제외하곤 그를 주목했던 사람이 많지 않다. 탄핵 정국에 접어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던 이 양상은 각 당 후보 확정과 함께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는 지금의 바람이 "안철수가 좋아서" 불었던 2012년과 다르다는 반증이다. 투표용지에 새겨질 후보 면면을 보고서 안철수를 지지하게 된 사람이 처음부터 그를 지지했던 사람보다 훨씬 많다. 문재인 후보가 대세를 유지하는 동안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하고 나선 상황이다.
◇남은 한 달, 이제 '바람'은 어디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는 선거일까지 결코 길지 않은, 그렇다고 결코 짧지도 않는 시간이 남아 있다. 선거판에서 한 달이면 바람은 얼마든지 꺼질 수 있고, 또 다시 불 수도 있다.
지금 바람을 보여주는 건 여론조사 결과들이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는 수치를 보지 말고 추세를 보라"고 말한다. 당장의 지지율 수치보다 상승 흐름이냐 답보 국면이냐 하락세로 돌아섰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안철수 후보는 아주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그 상승세는 "내가 잘해서" 만들어냈다기보다 반사이익에 더 가깝다. 그에겐 2012년의 안철수 현상을 재현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안철수가 좋아서" 지지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문재인 후보 측은 이 바람을 꺽기 위해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됐다. 새로운 모멘텀을 찾으려면 선거의 구도를 흔들어야 한다. 여러 '프레임'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대선은 더욱 거칠어지게 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