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 ‘팔리아치’와 ‘외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들이다. 레온카발로와 푸치니가 각각 1892년과 1918년 발표한 두 작품 모두 치정살인극이다. 특히 나이 든 남편과 젊은 아내 그리고 아내의 애인을 둘러싼 삼각관계가 질투에 눈먼 남편이 살인하는 결말로 끝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원래 ‘팔리아치’는 이탈리아 남부 시골에 들어온 초라한 유랑극단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이탈리아 연출가 페데리코 그라치니는 1950~6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뮤지컬극장으로 바꿔놓았다. 또 ‘외투’는 원작에선 파리 세느강의 선착장이 배경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시골 강가의 하역창고로 무대로 바뀌었다.
‘팔리아치’는 1막에서 뮤지컬극장 외관에서 시작돼 분장실과 복도 등 극장 내부와 출입구 바깥으로 바뀐다. 그리고 2막에서는 극중극인 뮤지컬 공연이 이뤄지는 무대 위와 관객이 가득 찬 객석이 펼쳐지는 등 무대 디자이너 안드레아 벨리의 공간 활용은 탁월하다. ‘외투’ 역시 사실적인 하역장에 이어 예상하지 못했던 큰 배의 등장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또 ‘팔리아치’와 ‘외투’의 여주인공 넷다와 조르젯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이번 공연에서 뛰어난 존재감을 뽐냈다. 리릭과 스핀토를 오가는 안정감 있는 가창력과 한층 좋아진 연기력으로 작품의 매력을 한껏 살렸다. 또 두 작품에서 넷다의 남편 카니오와 조르젯타의 애인 루이지 역을 맡은 미국 테너 칼 태너 역시 임세경과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아내의 불륜에 절망한 카니오 역은 압도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상임지휘자 주세페 핀치가 이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 등 여러 요소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혔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안젤로 스밈모의 안무다. 스밈모는 오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안무가 밥 포시 스타일을 무대에 가져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된 뮤지컬 ‘시카고’나 ‘캬바레’로 잘 알려졌지만 포시 스타일은 흔히 엄지와 중지를 튕기는 것, 어깨와 엉덩이를 비스듬히 돌리거나 흔드는 춤, 중절모와 흰 장갑을 이용한 제스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검은 팬티스타킹와 상의, 점잔빼는 듯한 걸음걸이 등 한눈에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지금 시각에서 봐도 매우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스타일은 그를 20세기 뮤지컬 역사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연출가 겸 안무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뮤지컬 무대로 바뀐 ‘팔리아치’에서 넷다와 무용수들은 포시 스타일의 화려하면서도 냉소적인 춤을 선보인다. 하역장이 배경이라 원래 춤이 없는 ‘외투’에서도 무용수들이 등장해 포시 스타일의 춤을 춘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화려한 도시로 나가고픈 조르젯타의 환상 속에 나오는 것이다. 덕분에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라는 이야기 외에 공통점이 없었던 두 작품은 포시 스타일의 춤으로 통일성을 가지게 됐다. 포시 스타일은 원래 끈적끈적한 재즈 리듬과 어울리지만 베리스모 오페라의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