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떠난 아내’ 고난은 무엇일까… 김헌곤 관장의 소망

입력 2017-04-09 16:46 수정 2017-04-09 16:59
“10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고난주간은 40년 만에 아내 없이 맞이하는 시간이 될 듯싶습니다. 2주 전 떠난 아내가… 보고 싶습니다.”

종려주일인 9일 전남 신안군 증도면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서 만난 김헌곤(66) 관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김헌곤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장이 9일 전남 신안 순교기념관 앞에서 고 한현순 사모가 사용하던 성경책을 얼굴에 대고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김 관장의 부친은 군산중동교회를 개척하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까지 지낸 고 김용은(1918~2008) 목사다. 그의 가문은 1950년 전북 정듭두암교회에서 공산군에 의해 친할머니와 친형, 작은아버지, 친척 등 22명이 몰살당했다.

김 관장은 9세 때 모친을 잃었다. 6.25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자녀를 잃은 충격에 시름시름 앓다가 60년 소천 했다. 첫째 누나도 전쟁 후유증으로 72년 사망했다. 어린 나이에 모친을 잃고 누나의 죽음을 지켜본 김 관장은 젊은 시절 심한 방황을 했다. 군복무 중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두 번 시도할 정도였다.

김헌곤 관장이 지난해 4월 고 한현순 사모와 문준경 전도사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72년 7월 춘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성시화대회에 참석해 무릎 꿇고 땅바닥을 치며 회심을 했다”면서 “그 후 73년 서울신대에 입학하면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 관장이 한현순 사모를 만난 것은 76년 독립문성결교회 전도사로 시무할 때다. 중매로 5살 어린 자매를 만났는데, 한국어린이전도협회 간사로 동네 전도를 위해 북을 치러 다닐 정도로 신앙이 좋았다.


77년 한 사모와 결혼한 김 관장은 전북 순창 동계교회, 남원교회, 오산 평화교회, 춘천 새순교회, 익산 함열교회에서 사역했다. 순교의 열매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김 관장을 포함해 가문에서 29명의 목사와 7명의 전도사가 나왔다. 두 자녀도 반듯하게 자라 그 대열에 섰다. 첫째 딸은 아프리카 모로코 서쪽 카나리아 제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서울 한빛교회 전도사다.

김 관장은 2014년 8월 기성의 대표적인 순교자인 문준경(1891~1950) 전도사를 기념하는 초대 관장에 취임했다. 이제는 고난의 터널은 통과한 듯 했다. 그러나 취임과 비슷한 때 아내가 폐암 4기라는 비보를 접한다. 김 관장은 아픈 아내를 생각하며 지난해 10월 이런 시를 썼다.

“‘사각사각’ 생쥐가 뭘 갉아먹는 소리가 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침대 밑을 살펴보니 생쥐의 흔적이 없다/(중략)/ 쥐들이 못 다니게 강아지를 매어놓았다/ 어제 늦은 밤에 ‘사각사각’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내 사랑하는 마누라님이 호흡하는 소리였다/ 세균이 마누라님의 폐를 갉아먹는 소리였다/(중략)/ 아내의 폐를 갉아먹은 주범은 사실 ‘나’ 이다/ 40년 세월동안 온 몸을 갉아먹은 나쁜 죄인이다.”


한현순 사모가 사용하던 포켓성경에 적힌 문구. 한 사모의 신앙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달 22일 40년의 목회사역, 아니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쳐왔다. 사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광주 전남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아내는 24일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떴다.

김 관장은 요즘 순교기념관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저녁에 집에 가면 49㎡의 공간에 가득 찬 어둠이 그를 맞는다. 

‘순교자 후손의 말년 들이닥친 고난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2주 전 61세 아내를 떠나보낸 중년 목회자에게 얄궂은 질문을 던졌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아내와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의 준비는 해왔습니다. 아내와 함께한 40년이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던 60대 중반 목회자의 눈동자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김 관장은 교회 담임시절 고난주간에 금식과 절식, 전도활동을 했다. 아내가 없는 올해는 과거 신앙지도를 했던 청년 중 목회자가 된 제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그들이 세운 미자립교회를 찾아가 100만원씩 헌금하고 격려할 계획이다.

“고통 앞에서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있더라도 감정적으로 가라앉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부활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남은 인생 사도 바울처럼 주님과 함께하는 순교·부활신앙을 잘 소개하고 천국에서 아내를 만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김 관장과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10~15일 고난주간을 보낸다. 그리고 16일 부활주일을 맞는다. 순교기념관 창문 너머 67년 전 문준경 전도사가 순교한 곳이 보였다. 

증도(전남 신안)=글·사진 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