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 “인기스타? ‘좋은 사람’인 것으로 족해” [인터뷰①]

입력 2017-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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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KBS 2TV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의 여파가 있긴 해요. 작년 이맘때에 비해선 거품이 확실히 빠졌지만요. 행복하게 즐기면서 감사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니까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하.”

명색이 한류스타인데 너무도 그대로다. 소탈한 웃음도 진솔한 성품도,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는 배우 진구(37)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빨리 가려고 해도 빨리 가지지 않아요. 15년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죠. 빨리 가려다 보면 숨만 차고, 혹시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경우 낭패를 보죠. 너무 멀리 가버리게 되니까. 천천히 가면 뭐든지 돌이킬 수 있거든요. 저도 천천히 걷다보니 여기까지 와있더라고요.”

‘태후’에 이어 MBC ‘불야성’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던 진구가 영화 ‘원라인’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연평해전’(2015) 이후 2년 만이다. 작업대출을 소재로 한 ‘원라인’에서 그는 사기꾼이면서도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고 사는 장 과장 역을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경쾌한 캐릭터를 연기한 후배 임시완의 곁에서 묵묵히 힘을 실어줬다.

진구는 “제가 봐도 시완이의 역대 작품들 중 가장 편해 보였고 (연기를) 잘한 것 같다”며 “그런데 이번에도 촬영 전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해오더라. 옆에서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본인의 과거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연기는 혼자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게 지름길이라는 걸, 그도 이제 알게 됐다.


“이번에 저는 뭐, 그냥 적당히 한 것 같아요(웃음). 솔직히 좀 편했거든요. 웬일로 액션신도 없고, 진흙탕에 들어가거나 하는 장면도 없고…. 몸이 너무 편했어요. 게다가 중간에 한참 등장하지 않으니까 (촬영)휴식기도 있었잖아요. 근데 (영화에서) 제가 안 나오는 시간이 지루하셨죠? 하하.”

처음 ‘원라인’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사했다. 캐릭터의 색깔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도 썩 와 닿지 않았다. 양경모 감독을 만난 뒤에야 마음이 바뀌었다. “감독님이 ‘그냥 네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장과장은 ‘인간답지 않은 일을 인간답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감독님의 눈에는 진구라는 사람이 그렇게 보였나 봐요. 그래서 설득 당했죠(웃음).”

‘태후’ 이후 처음 선보이는 영화이기에 부담이 될 법도 했다. 그러나 진구에게는 이전과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소중한 작품일 뿐이었다. 그는 “뜨거웠던 인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건 ‘올인’(SBS·2003) 때 이미 경험해봤다”며 “그때부터 스스로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다음에 내게 이런 인기가 또 주어진다면 그땐 속지 않겠어’라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고 의연해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덧 ‘연기파’ ‘믿고 보는 배우’ 같은 고마운 수식어들이 붙어있더라고요. 저는 거기에 안주를 했어요. ‘나는 지금 원래 하려던 것보다 더 큰 상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인기스타가 되고 싶었으나 지금은 선후배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으로 커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만 살면 되겠다’ 싶어요.”


‘올인’의 거품 인기가 사그라진 뒤 진구는 2년여간 무명 생활을 했다. 70~80번에 달하는 오디션을 봤으나 매번 낙방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전했던 영화가 ‘비열한 거리’(2006)였다. 자신감이 떨어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오디션에 임했는데, 그게 오히려 약이 됐다. 편안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유하 감독의 눈에 들었고, 이 작품은 진구의 연기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승률이 떨어지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진구는 “신인 때는 늘 승률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잘 될 것 같은 작품만 찾아다녔고, 주연 캐릭터에만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맨날 떨어졌죠(웃음). 연기도 안 되는 게 자꾸 큰 역할만 맡으려 했으니…. 아무 것도 없는 무명배우가 겁도 없이 큰 작품에만 욕심을 냈으니, 잘 될 리가 있나요.”

신인배우 진구의 꿈은 ‘시상식에 초청돼 당당히 배우 지정석에 앉는 것’이었다. “신인 때 이병헌 선배를 따라 어느 시상식에 갔는데, 병헌 선배는 배우들 앉는 앞쪽 자리에 앉으시고 저는 그 극장 제일 뒷자리에서 구경을 했어요. ‘저 배우들 틈에 앉아있기만 해도 행복하겠다’라는 꿈이 있었죠.”

‘비열한 거리’를 계기로 그 꿈은 이뤄졌다. 당시 유수 영화제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다. 당시의 감상을 그는 아직 잊지 못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뭔가를 이뤄낸 것 같은 희열이 있었어요. ‘나 되게 인정받았구나. 탑(top)이 아니라도 역할에 상관없이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진구는 “주인공도 몇 번 해봤지만 주연은 너무 힘들다”며 “역할에 따른 책임감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원라인’처럼 여럿이 같이 만드는 영화도 좋더라. 조연이나 특별출연이 오히려 더 행복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집에서는 배우 아닌 ‘아빠 진구’다. 2014년 9월 결혼해 어느덧 두 아들을 얻었다. 평소 육아에 열심이라는 그는 “혼자 대본을 보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거의 없어진 것만 빼고는 별로 힘든 게 없다. 아기들이 너무 예쁘다. 일단 아빠가 잘 시간을 확실히 보장해준다. 둘 다 밥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진짜 행복한 일인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배우들은 촬영 없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잖아요. 와이프 눈치가 보여서라도 안 도와줄 수가 없죠(웃음). 그런데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아요. ‘저 아이가 내 아이라니….’ 너무 꿈같고 신기하죠. 그래서 1분 1초라도 더 같이 있어주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