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벚꽃구경을 준비 중이신가요. 여의도에선 지난주 토요일(1일)부터 봄꽃축제가 시작됐습니다. 제 주변에도 벚꽃구경을 가려는 연인들이 많더군요.(북적대기만 하는 걸 왜들 그렇게….)
벚꽃 시즌이라 그런지 이달 초 서울시청에 설치한 왱체통(취재의뢰함)에도 벚꽃에 대한 의뢰가 있었습니다. ‘벚꽃은 일본 국화인데 원래 우리나라에 있던 건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심은 건지 궁금합니다.’ (봄나들이 가려는 연인에게 찬물을 끼얹으려는 게 아니라 의뢰가 들어와서….)
여의도에 핀 벚꽃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심은 게 맞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건 아닙니다. 창경궁에서 옮겨온 것이 많습니다. 그 과정을 설명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일본은 한일합병 다음해인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킵니다. 그러면서 창경원을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려고 1300여 그루의 벚나무를 심습니다. 벚나무는 무성히 자랐고, 일부 특권층들은 그 아래에서 밤에 술자리를 즐겼습니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아예 밤에도 창경원을 열어 달라’는 요구가 생겼고, 1924년 본격적으로 ‘창경원 야앵(夜櫻ㆍ밤 벚꽃놀이)’이 시작된 겁니다. 해방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일본이 창경궁에 벚꽃을 심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매년 4월 중순에 열리던 벚꽃놀이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단절됩니다. 선조들은 큰 벚나무를 베어냈고, 수많은 벚나무가 고사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니 사쿠라(벚꽃)도 죽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저서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매화·살구나무 등 수많은 꽃나무를 노래했던 우리 옛 선비들이 벚꽃을 읊은 시가는 단 한 편도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다 1952년 4월 창경원의 밤 벚꽃놀이가 재개됐고 198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인 꽃놀이 문화로 자리매김합니다. 1984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창경궁 복원 공사가 이뤄지면서 여기 있던 벚나무들이 어린이대공원과 여의도 일대로 옮겨진 겁니다.
여의도에 가득한 벚꽃엔 이런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벚꽃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광복 70년이 넘도록 역사를 바로세우지 못하는 한일 양국에 있는 거겠죠. 때문에 봄꽃축제가 옳다 그르다에 대해 논하는 건 부질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세월을 막론하고 벚꽃이 피면 심란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가수 10㎝는 이런 사람들의 울분을 대변한 곡 ‘봄이 좋냐??’를 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론 매년 이맘때쯤이면 음원사이트에서 역주행을 하는 ‘벚꽃엔딩’보다 이 곡이 흥하길 기원합니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덧붙이자면 많은 분들이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나라꽃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고 벚꽃은 그냥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꽃입니다. 벚꽃,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에 가장 많은 왕벚꽃나무의 원산지는 오히려 제주라는 설이 훨씬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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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기자 최경원 인턴기자 이재민 디자이너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