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계절에 곱씹어보는 '웰 다잉' 전시

입력 2017-04-06 16:41 수정 2017-04-09 13:16
전시장 입구, 포스터에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W자 형태의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있다. 유독 밝고 선명해 깜깜한 겨울밤을 밝혀주는 별들이다. 낭만과 사랑의 상징 같은 별자리가 그려진 곳이 고려시대 죽음 문화를 보여주는 석관의 뚜껑이다. 돌로 된 관에 안치돼서도 망자는 별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피안으로 가는 길 안내를 받고 싶어서 일까. 고려인들의 죽음 문화에는 언뜻 낭만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죽음을 노래하다’일까.
고려시대 채색사신도가 그려진 ‘석관’. 토지주택박물관 소장, 서울서예박물관 제공

꽃이 흐드러진 4월이다. 기운 넘치는 생명의 계절에 거꾸로 죽음의 문화를 돌아보자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죽음을 노래하다’전이다.

금석문 탁본 유물들이 주로 전시됐다. 탑본들이 주로 나와 실망할 수 있겠지만 이번 건 다르다.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 기증 고려 금석문전’이라는 부제를 보시라. 전시된 유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고고학자로 임나일본부설 등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던 오가와 게이기치(1882∼1950)의 주도로 채탁돼 일본으로 반출된 것들이다. 이 회장이 일본에서 사들여 환수한 것으로, 서울서예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고·중세 금석문 탁본 유물 30건 74점과 조선시대 묵적(서예작품) 44건 54점 등 총 74건 128점을 기증했다.
석관에 새겨진 청룡의 탁본.

고려시대는 화장을 해서 나온 뼈를 석관에 모셨다. 매장문화의 나무관보다 관 크기가 아주 작다. 석관을 두르는 4짝 판석에는 용·주작·현무·백호 등사신도 무늬를 새겨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뚜껑 안면에는 별자리 무늬를 새기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탑본 뿐 아니라 실제 석관 1점이 나와 생생함을 더한다.

묘지명(墓誌銘)도 죽음 문화의 큰 축을 이룬다. 망자의 삶을 요약정리해 돌에 새긴 것인데, 생전에 스스로 내용을 짓는 자찬묘지명도 있다. 묘지명 탑본이 흥미롭다. 고려 의종 10년(1156) 김공칭 처 양씨 묘지명. 두 아들과 두 딸을 뒀지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 그녀의 삶을 전하며 싯귀도 곁들였다.

“한 세상은 짧지만 만 년은 길다 하였으니/부인을 두고 말한 것인가/이 그윽한 곳으로 옮겨 좋은 땅에 모셨으니/몸은 비록 죽었어도 명성은 끝없이 전해지리라.’

묘지명은 사대부 뿐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에게도 바쳐졌으니 고려사회의 남녀평등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권세가였던 최항의 묘지명 크기는 양씨 것의 10배가 넘는다. 묘지명은 권력과 빈부 차를 반영하기도 했던 것이다. 묘지명은 당시 사회를 읽는 흥미로운 창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와 신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비천상 등의 모사도와 탑본도 나와 비교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에밀레종 비천상의 간절히 기구하는 모습이 탑본 덕에 돌올해 보인다.
이번 전시의 숨은 하이라이트는 관람객이 자신의 묘지명을 지어 볼 것을 권하는 방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조상들의 자찬묘지명을 따라하면서 웰다잉에 대해 곱씹게하는 전시다. 6월 18일까지. 3000∼5000원.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