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낸 빚, 1300조 가계부채…그 대책의 허망함

입력 2017-04-06 10:15

#1. ‘지난’ 정권에서 담뱃값을 인상한 적이 있다. 상승분은 2000원 정도였던 모양이다. 흡연 경험이 없어 그 정도가 얼마만큼의 부담인지 알지 못한다. 덕분에 전자담배가 불티나게 팔리고 궐련에 파이프담배까지 찾는 이가 늘었다고 들었다. 아마 흡연율이 줄긴 줄었을 거다. 통계를 보니 역대 최저치다. 하긴 꼭 담뱃값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담배를 끊은 지 한 달 된 친구의 금연 이유는 ‘건강해지고 싶어서’였다. 아니 ‘오래살고 싶어서'였던가.

#2. 난생 처음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금융당국은 그날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요지는 대출을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투기수요를 직접 억누르지 않고서 나온 정책이라 욕을 많이도 먹었다.

그 사이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었다. 통장에 단돈 1억원도 없는 난 그게 얼마나 되는 숫자인지 모른다. 심각한 문제라고들 하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한 대선후보에게선 가계부채 총액을 묶어놓겠단 공약도 나왔다. 미국에서 조만간 또 금리를 높이면 빚에 붙는 돈도 늘 수밖에 없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3.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물론 돈 쓸 곳은 각자 다르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많으니, 빌린 돈으로 투자인지 투기인지를 하는 이도 많다. 정부가 걱정해야 하는 게 이들은 아닐 테다. 걱정해야 하는 건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려면, 혹은 그런 미래를 꿈꾸려면 빚을 내야만 하는 이들이다.

#4. 1300조라는 숫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숫자의 심각함은 무언가로 묶어놓는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저 체온계의 숫자처럼 어떤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일 따름이다. 숫자가 느리게 올라가는 체온계를 발명한다고 해서, 혹은 발가벗고 억지로 체온을 내린다고 해서 독감이 낫지는 않는다.

#5. 사실 금융당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다. 애초에 이율 좀 조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성장, 산업구조, 집값, 평균소득, 분배 등 어떤 면에선 겹치고 어찌 보면 전혀 관련도 없을 듯한, 수도 없이 많은 문제가 가계부채라는 한 지표에 엮여 있다. 실물경제 전체를 뜯어고치는, 거의 재활에 가까운 치료를 거쳐야 그나마 실마리가 보일락 말락 할 병인 셈이다.

#6.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내리는 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을지 모른다. 어떤 이들에겐 중독이 일으키는 흡연 욕구보다 늘어난 경제적 부담이 컸을 테니까. 가계부채 억제책 역시 원리야 비슷하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에겐 빚을 늘리는 이유가 담배의 경우처럼 중독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꾸리고, 사회가 기대하는 평균적인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