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티가 선택한 소프라노 여지원 “노력으로 부족함 채웠어요”

입력 2017-04-04 06:30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내한한 소프라노 여지원. 경기도문화의전당 제공

지난 2015년 8월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콘서트 오페라 ‘에르나니’의 여주인공 돈나 엘비라 역으로 한국 소프라노가 깜짝 발탁됐다. ‘비토리아 여’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여지원(37)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소프라노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주역을 맡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국내 오페라계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지원은 한마디로 대기만성의 전형이다. 지금은 뮤지컬학과로 바뀐 서경대 성악과를 졸업학고 2005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그는 오랜 연마 끝에 최근에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휘자 무티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연출가인 크리스티나 무티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도약의 발판을 열어준 장본인이다. 그가 6일 경기도문화의전당과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무티 베르디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무티와 함께 내한했다. 2014년 대구 오페라 축제에서 ‘투란도트’의 류 역을 맡은 후 한국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많은 취재진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무티 선생님과 함께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기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공

 그는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무티 부부와의 만남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탈리아의 한 성악 콩쿠르에서 그를 봤던 크리스티나 무티가 2013년 자신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라벤나 페스티벌 ‘맥베스’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당시 3번에 걸친 오디션 과정에서 남편인 지휘자 무티도 그를 눈여겨 본 뒤 201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에르나니’에 추천했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도 그는 무티가 지휘하는 ‘아이다’에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더블 캐스팅 됐다. 

 그는 “2014년 무티 선생님으로부터 ‘에르나니’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 목소리가 이 작품에 맞는지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오디션에 참가하면서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얼마나 대단한 위상인지 몰랐다”고 웃었다.

 무티가 높이 평가하는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선생님께서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하셨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사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무대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좀더 과감하게 연기하는 등 역할에 집중하는데, 아마 그런 점을 좋게 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무티 덕분에 날개를 달았지만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랫 동안 스스로를 단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기교, 뛰어난 음악적 해석으로 호평받는 그는 “나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프라노가 아니다. 대학 때까지도 고음이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유학을 만류했을 정도”라면서 “하지만 노래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더 배우고 싶었다. 이탈리아 와보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나는 처음엔 학교 시험도 떨어지는 등 울면서 공부했다. 그래도 조금씩 경험이 쌓이고 기량이 늘면서 그만큼 기회도 다가왔다”고 말했다.

무티가 지휘하는 콘서트에 출연중인 소프라노 여지원. 경기도문화의전당 제공

 그는 이탈리아에서 파르마 아리고 보이토 음악원, 시에나 카자나 음악원을 거쳐 모데나 베키 토넬리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특히 2010년 처음 만난 소프라노 라이나 카바이반스카는 그에게 최고의 은사다. 카바이반스카는 성악 테크닉은 물론 연기와 감정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던 그에게 오디션을 앞두고 자신의 드레스까지 직접 선물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선생님들에게 많이 배웠지만 카바이반스카 선생님께는 그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예전에는 제 음역대에 부담스러운 역할까지 맡아 목을 혹사하도 했지만 선생님을 만나면서 중구난방이었던 레퍼토리들이 정리가 됐다”고 밝혔다.

 이날 그는 언젠가 오페라 무대에서 빛나길 바라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를 남겼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면서 “내 사례가 성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의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