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은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80년대,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전후해 도심에서 밀려난 영세민이 하나둘 구룡산 자락에 모여들었다. 1000여 세대가 둥지를 틀고 무허가 판자집에서 생활해 왔다.
구룡마을 바로 맞은편에는 강남 부촌의 상징인 타워팰리스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남 개발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지난 30년간 이 곳은 ‘돈의 논리’가 ‘시민의 안전’보다 우선했다. 무허가 건물들이어서 제대로 된 전기, 수도는 물론 화장실도 갖춰지지 않았다. 대부분 비닐과 목재 등 불에 쉽게 타는 자재로 지어진 파자집마다 전깃줄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LPG 가스통이 골목마다 굴러다니고, 늘 누전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도 ‘강남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라는 개발 논리 앞에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떻게 개발하느냐, 수익을 누가 더 갖느냐를 놓고 갈등이 지속돼 왔다. 그동안 ‘안전 사각지대’란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2009년 이후 거의 해마다 화재와 안전사고가 발생해 주민들은 “화염 속에서 사는 듯하다”고 말하곤 했다. 특히 2014년 11월에는 대형 화재로 1명이 숨지고 1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 고물상에서 시작된 불은 인근 판자집으로 번져 5만8080㎡ 중 900㎡와 무허가 주택 16채를 태웠다.
구룡마을은 2011년 개발이 결정됐으나 개발 방식을 둘러싼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 탓에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다 결국 구역이 실효됐다. 2014년 화재를 계기로 정체돼 있던 개발 논의가 다시 시작됐지만, 거듭되는 소송 속에 난항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구룡마을을 100% 수용사용방식 공영개발로 확정하는 ‘개포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 최근 1000여 가구 가운데 30여 가구가 이주하는 등 변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또 다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29일 오전 8시47분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에서 큰 불이 나 소방차 30여대가 출동했다. 소방 당국은 현장 상황에 따라 소방 인력을 더 투입할 예정이나, 마을 진입로 등 길이 좁아 소방차가 충분히 불길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진화작업은 1시간 30분 넘게 난항을 겪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밖으로 대피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불길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주민 한 명은 진화가 답답하다며 직접 물 호수를 끌어와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 주민 정모(54)씨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불이 계속 옮겨붙고 있다”며 “마을 안에서 LPG 가스통이 계속 터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강남구청은 현재까지 마을 29가구가 불에 탔으며 인명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주민 1명이 연기를 마시고 인근 병원으로 호송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