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 과연 공격성을 억누를 수 있을까. 미국의 동물보호단체가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채식을 권했다. 채식을 하면 전쟁이나 살상무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평화와 사랑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단체의 캠페인은 엉뚱하게 ‘채식주의와 공격성의 상관관계’ 논쟁으로 확산됐다.
발단은 미국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PETA)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노스웨스트 16번가에 설치한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에는 미사일 위에 앉아 하늘을 날고 있는 김 위원장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함께 'Don't Go Ballistic, Go Vegan' 'And Make Love Not War'란 글귀를 새겼다. "미사일은 그만 쏘고 채식을 하라" "전쟁 대신 사랑을 하라"는 뜻이다.
이 단체는 또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에게 “인간을 포함해 지구의 모든 동물을 위헙하는 김정은의 핵 개발을 억제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잉그리드 뉴커크 PETA 회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지구상의 모든 종이 막대한 고통을 겪는다. 핵전쟁은 모든 생명체에게 고통과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PETA는 동물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국제단체다.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를 반대하고 있다. 동물을 죽여 고기를 얻는 육식은 당연히 경계 대상이다.
이 단체는 채식을 통해 김 위원장의 공격성을 줄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채식주의와 공격성 감소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사례로 미국 앨라배마주의 한 교도소가 수감자들에게 실시했던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PETA 관계자는 “교도소가 육식을 배제한 식사를 제공한 뒤부터 수감자들의 폭력적인 행동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채식이 공격성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육류, 우유, 달걀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동물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며 “육식이 지구상의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론도 있다. 미국 잡지 애틀랜틱의 시니어에디터 제임스 햄블린은 지난 25일 “채식이 사람을 덜 공격적으로 만드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채식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햄블린은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과 인간의 삶을 똑같이 존중한다고 말하는데, 왜 인간의 육식과 채식을 명확하게 구분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PETA에 채식과 공격성 감소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증거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소의 채식 실험에 대해서도 피실험자가 사형수인 점, 명상을 병행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사형수라는 조건은 상당히 극단적인 상황이다. 이미 담배나 카페인에서 멀어진 사형수들에게 채식주의는 어떤 형태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햄블린은 PETA의 ‘김정은 현수막’에 대해 “세계 평화를 앞세워 채식주의를 전파하는 전략”이라며 “채식이 공격성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매혹적인 아이디어다. 사실이라면 가치 있는 권고”라고 평가했다.
최민우 인턴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