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경선, 관심 못끌었지만 토론은 멋있었다

입력 2017-03-28 17:20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당내 경선에서 남경필 경기지사를 제치고 후보로 확정됐다. 유 의원은 국민정책평가단 투표(4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30%), 당원·선거인단 투표(30%)를 합산한 결과 3만6593표를 얻어 2만1625표에 그친 남 지사를 눌렀다.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4개 정당 중 가장 먼저 대선 후보를 뽑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모두 후보를 선출하는 4월 초 이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 의원은 정견 발표에서 “보수가 궤멸할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제가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또 5·9 대선까지 “시간은 충분하다”면서 “감동의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겠다”고 자신했다.

◇스탠딩 토론, 끝장토론…


바른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짧은 기간과 후보들의 미미한 지지율 등 악조건 속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당 내에선 경선 토론에서 기성정당과 차별화된 면모를 보이며 신생정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고 자평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19일 호남권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28일까지 열흘 간 4차례 권역별 정책토론회와 한 차례의 TV토론 등 경선을 진행했다.

지난 21일과 23일 영남권과 충청권 정책토론회에선 새로운 실험도 선보였다. 정치토론회 에 늘 등장했던 책상과 의자 대신 스탠딩 무대를 구성했다. 사전 원고는 물론 ‘답변시간 3분’ 같은 틀에 박힌 시간제한 규정도 없앴다. 두 후보는 토론회 도중 양복 재킷을 벗고 셔츠의 소매를 걷은 채 30분 간 ‘끝장토론’을 벌였다. 미국 대선 후보 토론회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두 주자는 모병제, 사교육 폐지, 증세와 복지 등 상대방 정책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유 의원은 남 지사가 제안한 모병제를 “정의롭지 못하다. 없는 집 자식들만 군대에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 지사는 유 의원의 ‘중부담 중복지’ 공약은 “결국 국민 세금부담만 높일 것”이라며 비판했다.

서로의 대선 전략인 보수후보 단일화와 연정에 대해 두 주자는 “당 지지율을 하락시킨 해당(害黨)행위(남 지사)” “민주당에 기웃거린다(유 의원)”며 날선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머를 잃지는 않았다. 유 의원은 남 지사에게 “제가 좋아하는 동생인데 요즘 너무 까칠하다”고 했고, 남 지사는 스스로를 향해 “키 작은 것 하나가 단점”이라고 농담하며 경색된 분위기를 풀기도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8일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학예회’란 소리를 들은 다른 당 토론회와 달리 우리 당 토론회는 치열하고 모범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바른정당 후보가 2명뿐이었기에 이런 토론이 가능했다는 반론도 있다. 일 대 일 대결 구도로 인해 후보들의 발언시간이 충분히 보장되고, 토론의 논점 역시 흐려질 여지가 적었다는 의미다.

◇후보 되자마자 선택의 기로에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에게는 독자 출마냐 후보 단일화냐의 선택이 남아 있다. 낮은 지지율도 끌어올려야 한다. 오는 31일 자유한국당, 다음달 4일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선출되기 전까지 지지율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면 당내에서부터 단일화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유 의원은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이제까지 보수 민심이 정 붙일 데가 없어 반기문 황교안에게 갔다가 심지어 안희정 안철수에게 갔다”며 “이제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려는 유승민에게 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좌파 정치세력과 우파 무자격자들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며 자신이 새로운 보수의 적통 후보임을 강조했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도 기죽지 말라”며 당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유 의원 대선캠프의 한 의원은 “지금까지 공개된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라고 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이미 단일화 논쟁이 시작됐다. 캠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 중진 의원은 “후보 단일화의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당은 친박(친박근혜)계 청산 등 개혁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국민의당은 안보관·경제관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의원은 “자력으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이길 수 없는 세 당이 종국엔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 전까지 유 의원의 몸집을 최대한 불리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유 의원도 후보 단일화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원칙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 의원은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치맛자락만 잡고 정치하겠다는 세력이 한국당에 있다”고 친박계를 정면 비판했다. 또 “한국당 후보는 1등이나 2등이나 대통령이 되면 법원에 재판받으러 가야 된다”며 잠재적 단일화 대상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진태 의원을 자극했다. 유 의원 본인이 후보 자격에서부터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유 의원은 전날 “단일화를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되 단일화 이슈에만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좌파 정치세력과 우파 무자격자를 지목한 건 친박·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중도·보수 연대 의지로 해석된다.

유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 연구위원을 지내다 2000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에 발탁돼 정계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핵심 참모를 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초선 의원으로선 이례적으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돼 ‘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유 의원은 이듬해 비례대표직을 사퇴하고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캠프의 정책 메시지 단장을 맡았다.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자주 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지만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혀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지난해 4·13 총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