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요하면 생각하고 만듭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등장했습니다. 담뱃갑 덮개입니다.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선호하는 색상이나 그림을 입힌 담뱃갑 덮개를 패션 소품으로 사용한 흡연자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시행으로 불티나게 팔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팔렸는지 모릅니다. 담뱃갑 덮개는 대부분 제조사나 유통사의 명칭이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를 반감하는 시도를 봉쇄하겠다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언제 철퇴를 맞을지 알 수 없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제조사와 유통사가 불분명해 판매량이나 시장규모는 당연히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요즘 담뱃갑 덮개를 사용하는 흡연자를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5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점포에서 담뱃갑 덮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8000원입니다. 실리콘 재질이고 디자인이 다양합니다. 상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때문에 없어서 못 판다”고 말이죠. “디자인이 예뻐서, 흡연자 본인은 상관없지만 경고그림을 봐야 하는 비흡연자 가족에게 미안해서 사는 사람도 있다”고 상인은 덧붙였습니다. 제각각 이유야 어떻든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시행으로 이 제품의 수요가 늘어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보건복지부의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정책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담배시장 동향’에서 담배 판매량은 지난해 11월 3억1000만갑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같은 해 12월 2억9000만갑, 올해 1월 2억8000만갑, 지난달 2억4000만갑으로 매달 줄었습니다. 지난달 판매량은 전년 동월대비 14%포인트 감소한 수치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3일부터 담배로 인한 폐해를 나타내는 10종의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부착했습니다. 담배 판매량의 급감은 그 결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담뱃값을 2000원씩 일괄 인상하고 흡연자를 줄이지 못했던 그 이전의 정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결과를 냈습니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정책은 새로운 시장을 키웠습니다. 대표적으로 담배 케이스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패션 소품, 또는 흡연량 조절을 목적으로 사용됐던 제품입니다. 하지만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시행 후 지난달까지 2개월 동안 판매량은 1350% 폭증했습니다. 담뱃갑 덮개도 ‘양성화’되면 시장규모가 관측될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집권하면서 새로운 경제발전 기조로 ‘창조경제’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다른 구호인 ‘증세 없는 복지’처럼 정책 목표나 실행 계획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정부의 대표적인 경제정책 실패 사례로 남았습니다. 차기 정부에서 폐기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를 앞두고 박근혜정부에서 시행돼 그나마 성공적으로 언급된 마지막 정책,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에서 파생물처럼 나타난 담뱃갑 덮개는 그래서 상징적입니다. 흡연율 감소를 앞세워 사실상 증세하고, 다른 정책으로 흡연율을 감소하고, 흡연자의 새로운 수요로 신시장을 육성하고, 그야말로 ‘창조경제’입니다. 담뱃갑 덮개는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창조경제’입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