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총회 끝나자 ‘헬게이트’가 열렸다… 워킹맘의 학부모 단톡방 체험기

입력 2017-03-24 11:50 수정 2017-03-24 14:07

초등학교 1학년 세현이(가명) 엄마가 ‘단톡방’(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모두 환영인사다. 1분도 지나지 않아 50건 이상 메시지가 들어왔다.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추가했다.

사람들은 다시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25명이 넘는 단톡방 멤버를 친구로 추가한,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에 100건 넘게 ‘안 읽은 메시지’가 쌓였다. 사람들은 세현이 엄마가 단톡방에 입장하기 전부터 나누고 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연히 세현이 엄마는 모르는 내용이었다.

세현이 엄마는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힘껏 머리를 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3월 초 학기 시작과 함께 만들어진 단톡방이었다. 20일이나 ‘지각’한 세현이 엄마는 대화에 끼어들기는커녕 ‘무슨 내용이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괜히 물었다가는 대화의 흐름을 끊을 것만 같았다.

세현이 엄마가 그나마 꼴찌는 아니었다. 앞으로 엄마 4명이 더 초대될 예정이다. 하지만 세현이 엄마처럼 ‘워킹맘’(일하는 엄마)인 나머지 4명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언제 합류할지 기약할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단톡방에서 세현이 엄마는 가장 낯선 사람이다. 이 단톡방은 서울 A초등학교 1학년 2반 학부모 단톡방이다.

세현이 엄마는 단톡방을 만든 나우(가명) 엄마와 학부모 총회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아 합류할 수 있었다. 나우 엄마는 잠시 뒤 “세현이 엄마까지 들어왔으니 ‘녹색봉사’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했다. 녹색봉사는 A초등학교 주변 횡단보도에서 학생들의 등하교를 지도하는 학부모 자원봉사를 말한다.

단톡방에 방금 들어온 세현이 엄마는 눈치가 보였다. 원하는 날짜를 선뜻 말할 수 없었다. 소심한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교내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세현이 엄마는 워킹맘 중에도 유난히 바빴다. 다른 학부모들이 원하는 날짜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모두 기피한 월요일 아침이 세현이 엄마에게 배정됐다.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가 집중되는 3월 하순은 첫 아이를 입학시켜 경험이 부족한 워킹맘들에게 고난의 기간이다. 지난 23일 A초등학교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세현이 엄마는 무역회사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시부모가 육아와 가사를 대신 맡아주고 있지만 학부모 역할은 결국 세현이 엄마와 아빠의 몫이다. 세현이 아빠는 봉사활동 등 교내 행사 참여를 분담할 수 있어도 단톡방에서 다른 엄마들과 대화하고 일정을 조율할 수는 없었다. 다른 엄마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다.

세현이 엄마는 24일 “같은 반 학부모들을 입학식과 총회에서 두 차례 만났다.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그 사이 육아에 적극적인 엄마들끼리 모여 그룹을 형성했다”며 “쉽지 않지만 아이를 위해 이 그룹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세현이 엄마와 같은 하소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타임라인이나 육아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총회 이후 학부모끼리 의견을 조율하는 등하교 지도나 청소 같은 봉사활동 일정에 대한 워킹맘들의 푸념이 많다.

상대적으로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전업맘’도 아이의 출신 유치원, 또는 동네에 따라 이미 형성된 같은 반 학부모 그룹으로 뒤늦게 합류해 고충을 겪을 수 있다.

세현이 엄마는 “봉사활동 참여일을 원하는 날짜에 배정받지 못했지만, 한 번만 희생하면 다른 학부모들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