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개봉, "이거 실화냐?"

입력 2017-03-23 18:09
“둘이 진짜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놔두지 왜 그러는 거야. 자기들은 잔인한 짓 하면서.”

23일 베일을 벗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등장하는 대사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을 인정한 뒤 내놓은 첫 번째 영화다. 여주인공은 ‘나이차가 나는 유부남 감독과 불륜 관계를 가졌던 여배우’고 이 역할을 김민희가 맡았다. 실제인 듯 실제 아닌 실제 같은 이 영화로 김민희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달 초 서울 성북구 토마토키즈카페에 설치된 취재대행소 왱의 왱체통에는 이런 취재 의뢰가 들어왔다.

“김민희 같은 배우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정부에서 훈장을 준다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예술가의 사생활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례적으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들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별한 기한 없이 ‘검토 중’ 이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정부포상업무지침에 따라 부도덕한 행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언론보도 또는 소송·민원 제기 등 논란으로 정부포상이 합당치 않다고 판단되면 추천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 속에 작가의 삶이 녹아드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경험이 윤리와 충돌할 여지가 있을 때 논란이 발생한다. 예술에 대한 평가에서 사생활을 떼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달라서다. 각 분야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 중 일부도 이런 논란에 휘말렸었다. 시간차를 두고 손가락질도, 찬사도 받았다.

할리우드를 볼까. ‘가스등(1944)’ 등으로 오스카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1950년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대중의 거센 비판을 받고 할리우드를 떠났다.

우디 앨런은 사실혼 관계였던 배우 미아 패로우의 양녀 순이 프레빈과 사랑에 빠져 1997년 결혼에 골인한다. 스캔들이 터졌을 무렵 우디 앨런이 연출하고 미아 패로우와 함께 출연한 ‘부부일기(1992)’가 공개됐다. 여기엔 아내와의 갈등 끝에 어린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교수가 등장한다. 본인의 사생활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었는데도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문단에는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가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은사의 부인인 프리다 위클리와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피를 했고 1914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채털리 부인의 사랑(1928)’같은 문제작들을 쏟아냈다. 주인공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사냥터지기인 올리버 멜로스의 아이를 임신하고 남편을 떠난다.

체코의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도 61세때 골동품상의 아내였던 38살 연하의 카밀라와 사랑에 빠졌고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 예누파 등에서 불륜을 소재로 다뤘다.


영화는 영화다?

홍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전적인 요소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개봉을 맞아 직접 홍대와 광화문에 나가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82.8%(107명 중 88명)의 응답자가 예술가의 논쟁적 경험이 담긴 작품에 대해 ‘괜찮다’고 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은 17.8%(19명)에 그쳤다. 그러나 홍상수-김민희 스캔들이 비판할 만하다는 응답은 72.5%(79명). 예술가가 자신의 논쟁적 경험을 담는 건 괜찮지만 이번 스캔들은 비판을 받을만했다는 얘기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관람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은 78.7%(85명)로 볼 의향이 있는 쪽(21.3%, 23명)보다 많았다.

서울 강서구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이모(48·여)씨는 “공감을 많이 했고 대사가 좋았다”며 “이 영화로 두 사람이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맹모(22)씨는 “홍 감독 영화는 원래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면서 “사생활을 떠나 관객 각자가 답을 얻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모(31·여)씨는 “홍 감독 팬이라 객관적으로 관람하려 했지만 이번 영화는 견디기 힘들었다”며 “영화 전체가 자기변명 내지는 합리화 같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스캔들 탓일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개봉 첫날 성적은 비교적 저조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실시간 예매율 0.9%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누적 예매 관객수는 1810명이다. 직전작인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2016)’은 불륜 스캔들 직후 개봉했는데도 첫날 2055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 전 작품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의 첫날 관객은 3525명이었다.

그가 김민희와 함께 작업한 첫 작품 제목은 공교롭게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였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는 훗날 어떻게 정리될까?


예술은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의 전달이다. 
-레프 톨스토이

전수민 기자 김태영 인턴기자 이재민 디자이너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