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품은 아이들] 하나님, 손을 잡아주세요… 뇌병변 1급 동욱이

입력 2017-03-22 16:58
“우리 동욱이(19)는 골목대장이었어요. 동네에서 축구를 하면 형들보다 두세 걸음 앞서 달려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서있기보단 지칠 줄 모른 채 뛰어다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누워있는 시간이 가장 긴 아이가 됐네요.”

아들의 ㄱ자로 꺾인 손목을 어루만지던 엄마는 행여나 아들이 눈치 챌까 고개를 돌려 눈가를 훔쳤다. 침대에 누운 아들은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엄마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문은희씨(왼쪽)가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아들 김동욱군을 돌보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또래에 비해 유독 활발하던 동욱이를 침대에 눕게 만든 건 12년 전 바닷가로 여행 갔을 때 당한 추락사고였다. 삼촌 등 가족들이 낚시를 하는 사이 동욱이는 3층 건물 높이의 방파제에서 갯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욱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린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1시간 넘게 탐색작전을 펼치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 문은희(55)씨는 “구급차에 눕혀진 동욱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눈을 감는데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서 “하나님께 제발 숨만 붙여달라고 울부짖다가 구급차 안에서 기절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10시간에 걸친 뇌수술은 잘 끝났지만 동욱이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설명을 듣고 문씨는 그날로 중환자실에 둥지를 텄다. 사경을 헤매는 아들과 24시간 내내 씨름했다.

동욱이가 의식을 찾은 건 6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름표 옆엔 뇌병변 1급 장애 스티커가 붙었다. 사고로 장기들이 손상돼 신장과 비장 등을 떼 내야 했던 동욱이는 회복이 더뎠고 합병증이 생길 때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했다.

“병실에 같이 있던 또래 아이들이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창가 쪽 침상에는 호전될 가망이 없는 아이들을 뉘였는데 동욱이도 그쪽에 있었죠. 병원 예배실에서 밤샘 기도하며 신앙의 힘으로 간신히 버텼습니다.”

문은희씨(오른쪽)가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아들 김동욱군을 안은 채 활짝 웃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엄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동욱이는 2년 만에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다. 의료진들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재활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소견을 내놨다. 사고 후 처음으로 희망의 빛을 본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넘게 이동해 재활·인지 치료를 받는 나날이 이어졌다. 최근엔 재활치료 중 동욱이가 몇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하지만 커진 희망만큼 현실의 벽도 높았다. 동욱이가 사고를 당하기 2년 전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 문씨는 홀로 1남 2녀의 생계를 떠맡아왔다. 세 차례의 큰 수술과 입원비, 치료비 등 12년 동안 아들 곁에서 병구완을 이어오는 동안 남겨진 건 빚뿐이었다. 낮엔 병원에서 동욱이를 돌보다 저녁때마다 식당일을 하며 보태왔던 생활비마저 두 딸이 시집간 후 동욱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지면서 끊겼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버티기엔 힘겹기만 한 현실 앞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엄마는 미안함이 더 크다.

“더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를 줄 수 없는 못난 엄마라 미안해요. 동욱이 챙기느라 시집갈 때 아무것도 못해준 두 딸 얼굴도 부쩍 떠오르네요.”

수만 번 아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성할 날 없었을 손목과 허리에 파스를 붙인 채 엄마는 동욱이의 손을 다시 잡았다.

“동욱아 매일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나님, 저희가 붙든 이 손을 잡아주세요. 그리고 동욱이를 일으켜 주세요.” “아메엔.” 가까스로 입을 뗀 동욱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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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