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지기 친구를 재작년에 하늘로 보냈습니다. 기쁘고 힘들고 우울한 모든 감정을 공유했던 친구가 떠난 뒤 하루하루 슬펐다가 기뻤다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때가 점점 많아지네요. 주위에 티내면 너무 걱정할 것 같고, 친구는 잘 지내고 있겠죠?"
친구를 잃고 2년이 지나도록 감정을 가누지 못하던 이가 이런 글을 올린 곳은 '마리레터'라는 사이트였다. '어찌 할까요' '한숨' '마음이 안 좋아요' '헤어졌어요' '복잡해요' '그 누구보다 초라해진' 같은 제목이 빼곡한 글 목록 틈바구니에 그의 글이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는데 '손으로 쓴 편지'였다.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 네 몫까지 더 잘 살게. 꼭. 나 잘 지켜봐줘. 조금 이따 만나서 뜨겁게 포옹하자. 벌써 그립다"란 글귀를 종이에 꼭꼭 눌러 쓴 뒤 사진으로 찍어 댓글란에 올려준 거였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괜찮다, 괜찮다, 그냥 그렇게 묻어두고 있어요. 주변에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가볍게 생각하라고 말해줍니다. 혼자 있으니 자꾸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사람들 만나는데, 그래도 계속 가슴이 답답해요. 이것 또한 지나가겠죠?"
이런 글을 올린 이에게는 아래와 같은 편지가 댓글로 달렸다. 캘리그래프를 이용해 손편지의 따뜻한 감성을 살린 글귀. '그 울음 그칠 때까지 네 곁에 있을게' 같은 위로와 공감의 말이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잘 전달되도록 이 사이트에선 이렇게 댓글을 단다.
혼자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 내 고민에 공감해줄 대상을 찾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고민은 더 깊어지고, 외로움은 더 부풀어 올라 끝내 상처가 되고 만다. '마리레터'는 이런 이들을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작가의 재능기부로 익명으로 올라오는 고민 글마다 저런 손편지로 댓글을 단다. '마리라이터'라고 부르는 자원봉사자를 수시로 모집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감성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내부 심사를 거쳐 현재 57명이 마리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한 네티즌은 “마리레터에 올라오는 사연과 공감편지를 보고 있으면 감성이 메말라가는 사회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마리레터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는 22일 이른바 ‘수지 폰케이스’로 유명해진 곳이다. 2015년 1월 가수 겸 배우 수지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항패션을 촬영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 케이스에 쏠렸다. 화려한 꽃무늬의 독특한 디자인을 누가 만들었는지, 네티즌이 찾아내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식회사 ‘마리몬드’는 다양한 꽃무늬 패턴을 넣어 폰케이스 티셔츠 가방 등을 만든다. 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한다. 지난 시즌 김학순 할머니를 닮은 무궁화 디자인을 넣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이순덕 할머니가 생각나는 동백꽃을 활용하는 식이다. 수지 폰케이스는 심달연 할머니가 미술치료를 받으며 직접 만든 압화(押花) 작품을 차용했다.
2009년 비영리단체인 인액터스에서 활동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한 윤홍조 대표는 마리몬드를 창업하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제품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나비를 뜻하는 라틴어 마리포사(Mariposa)와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서 아몬드(Almond)를 따와 마리몬드라는 이름을 지었다. 못다 핀 꽃에도 나비가 내려앉으면 새로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마리몬드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나비처럼 날겠다는 의미다.
마리몬드는 다양한 제품, 콘텐츠 커뮤니티를 통해 꽃무늬 패턴을 매개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다양한 꽃무늬를 가진 핸드폰 케이스, 팔찌, 가방, 옷 등을 제작해 팔고 그 수익금 일부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비기금 등의 단체에 기부한다. 윤 대표는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가진다”며 피해자 집단이 아니라 한 분 한 분 존엄성을 지난 여성으로서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마리몬드는 존귀함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리레터도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처럼, 내 문제를 두고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마리레터는 이런 현실에 놓인 사람들이 대화와 공감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하며 존귀함을 회복해가는 공간이 되려 한다.
마리레터 총괄자 박보혜 실장은 “마리레터에서 공감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은 분이 다른 분들에게 또 다른 위로와 용기를 전달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장기적으로 마리레터가 공감의 대표 커뮤니티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마리몬드는 22일 마리레터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마리레터 애플리케이션은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6월 출시할 예정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