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어제(18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전격 소환조사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SK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봤던 특수본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법리 구도에 따라 뇌물죄 구성 요건에도 해당하는지를 적극 들여다보겠다는 의미죠. 최 회장은 어제 오후 2시 소환돼 13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오늘(19일) 새벽 3시30분쯤 귀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참고인 자격이었으나 신분이 언제 피의자로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 박근혜 대면조사 후 최태원 신병처리 결정=SK그룹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주도하는 두 재단에 2015년 11월과 2016년 2∼4월 모두 111억원의 출연금을 냈습니다. 이 같은 출연이 최 회장의 2015년 광복절 특사나 면세점 특허권 로비 등과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먼저 이뤄졌으나 경영 현안 등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면서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로 발전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2016년 2월 박근혜-최태원 독대 직후 K스포츠재단이 80억원의 별도 지원을 요구한 배경도 의심스럽습니다. 별도 지원은 구체적인 조율 과정에서 액수 문제에 이견을 보여 무산되긴 했지만 말이죠.
최 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수본은 최 회장에 대한 신병처리를 미룰 것입니다. 오는 21일 박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후에 출연금을 강요로 볼지, 뇌물로 볼지 결론내리는 게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최 회장 사법처리 문제도 판단할 겁니다. 특수본이 뇌물죄로 최종 판단한다면 자칫 최 회장은 특검팀이 구속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뒤를 밟을 수도 있습니다. 그 운명은 박 전 대통령 조사 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죠.
# 롯데도 정조준…면세점 사장 소환=SK에 이어 롯데그룹도 뇌물 의혹의 정조준 타깃이 됐습니다. 특수본은 오늘 오전 10시 롯데면세점 장선욱 대표이사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입니다. 롯데도 두 재단에 45억원을 출연하고 지난해 3월 박근혜-신동빈 독대 이후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75억원의 별도 지원금 제공을 요구받았습니다. 결국 액수 문제에 대한 실랑이 끝에 이보다 5억원 적은 70억원을 제공했는데 이 별도 지원금은 롯데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기 직전 돌려받았죠.
이런 거래의 이면에 면세점 사업권 문제 등이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특수본은 롯데그룹 핵심 관계자들을 조사한 뒤에 최종적으로 신동빈 회장을 부를 것입니다. 이후 사법처리 문제는 SK처럼 박 전 대통령 조사 후에 결정되겠죠.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