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성취 지향적인 부모의 사랑 방식

입력 2017-03-16 16:25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초등학교 2학년인 P는 “올백을 맞았다”라거나 “칭찬 스티커 모으기에서 일등을 했다”라는 식의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서 가족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이 많았다. 엄마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는 외동인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라며 진료실을 찾았다.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직장에 다니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엄마 노릇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억울해했다. P의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 사주고 바쁜 와중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주말엔 댄스교실, 체육 수업, 박물관 수업을 함께 다니고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얘기만 듣고 보면 엄마는 정말 열심히 부모 노릇을 해왔다. 문제는 P가 엄마와의 이런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취 지향적인 엄마는 아이와 수업을 다니며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뿌듯함을 느꼈겠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유분방한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늘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오히려 편안하게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놀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아이를 공허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 크게 자리 잡은 셈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거짓말은 대개 야단맞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거나 충동성을 반영하거나 정서적인 결핍감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P의 경우 엄마는 P가 원하는 것을 모두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P가 진정으로 원하던 엄마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니 P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는, 정서적으로 결핍된 아이의 특징을 보인 것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즉 엄마가 직장에서 성공한 방식과 가치관으로 아이를 사랑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잣대로 아이를 칭찬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엄마와 성향이 다른 P는 엄마가 보기엔 늘 게으르고 부족해 보이는 아이였다.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P는 엄마가 원하는 ‘잘나가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가치관이 그대로 아이에게 내사되어 ‘잘나가는 아이’가 되고 싶은 거였고 그게 현실로는 불가능하니 허구를 만들어 내는 습관이 생겼다.

P의 엄마처럼 남부럽지 않게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 붓는데 아이가 왜 엉뚱한 행동을 하고,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식 사랑도 연애와 같다. 연애의 첫걸음도 상대의 마음을 읽어 보는 것이 아니던가? 상대는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를 먼저 보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부모들이여 되돌아 보자! 과연 아이는 어떤 사랑을 원하는 지. 그리고 나는 어떤 ‘가치’를 갖고 사는 사람인지.













이호분(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