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보내지 않는 너에게" 세월호 여친에게 쓴 절절한 편지

입력 2017-03-16 00:01 수정 2017-03-16 00:01
사진=구성찬 기자

“답장을 보내지 않는 너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글이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글은 지난 13일 경북대학교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올라왔는데요. 편지에는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자친구의 애틋한 심경이 담겨있습니다.
경북대 학생으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13일이 여자친구를 만난 지 1163일 되는 날이며 100일을 앞두고 연락이 끊겼다고 적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날짜를 역산했는데요. 그날은 2014년 4월16일입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 등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날입니다.

글쓴이도 편지에서 수학여행을 언급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여행 일정이 만난 지 100일 되는 날과 겹쳐 갈지 말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남몰래 사귀고 있던 터라 여행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수학여행을 떠났고 글쓴이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는데요. 쉬는 시간에 심상찮은 카톡메시지가 여러 개 왔다며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99일 동안 너무 행복했어.'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
'나 연락 안 돼도 너무 슬퍼하지 마.'

사진=구성찬 기자

그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내가 그 날 '100일 때 내 옆에 있어 줘' 라는 말 한 마디만 했더라면 널 지킬 수도 있었을텐데”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글쓴이는 3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 입학했고, 며칠 뒤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면서 “휴대폰에는 아직 너와 내가 처음 만난 날짜가 떠 있고, 그리고 내가 그 날 꺼낸 수학여행 갔다 오라는 말은 아직도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너한테 이제 죄책감도, 슬픈 마음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 미안해, 아직은 못 할 거 같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보고 싶어”라고 편지를 끝맺었습니다.

이 편지는 세월호 참사로 연인을 잃은 남자친구가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날의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편지에 주목했습니다. 16일 ‘좋아요’ 등 반응이 5000개에 육박하고 있고, 댓글은 800개 넘게 달렸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자 세월호 인양 관련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음달 5일 선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첫 시도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9명이 남아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1000일 이상 진도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며 인양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네티즌들은 하루빨리 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며 침몰 원인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다음은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편지글 전문입니다.

대숲, 저는 글을 잘 못 쓰지만 오늘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한 편 쓰고 싶어요.

답장을 보내지 않는 너에게

안녕.
오늘은 너랑 나랑 만난 지 1163일 째 되는 일이야.
시간 참 빠르다. 그치?
오늘따라 너와의 100일이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넌 나한테 이렇게 말했지.
'100일 때 수학여행 가는데..가지 말까?'

'수학여행이잖아.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다 와. 주말에 만나면 되지'
라 말했고.
서로 다른 고등학교, 그리고 남들 몰래 사귀고 있던 입장이라 나름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 같아.
그렇게 넌 수학여행을 갔고, 난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어.
정규 시간이 끝나고 휴대폰을 받았을 때 너한테서 여러 개의 톡이 왔었지.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네 ㅋㅋ'라고넘기려했는데...내용이 심상치 않았어.

'99일 동안 너무 행복했어.'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
'나 연락 안 돼도 너무 슬퍼하지 마.'

너한테 바로 전화를 걸고 톡도 보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어. 도무지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지.
석식 시간에 한 소식을 들은 난 두 시간 가량 너한테 전화를 걸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문자도 보냈지만, 너에게서 돌아온 건 묵묵부답 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저 100일이 되던 날, 너한테 장문의 편지를 보냈지만 너의 답장은 오지 않았지.
그리고 며칠 뒤에 소식을 들었을 땐...진짜 미친듯이 울었던 것 같아. 내가 그 날 '100일 때 내 옆에 있어 줘' 라는 말 한 마디면 널 지킬 수도 있었을텐데.

그 날 이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 3년이나 흘렀어.
나는 그 동안 마음을 조금 추스리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입학하고, 이제 며칠 뒤엔 입대를 앞두고 있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으며 악착같이 살아왔지.
근데 나한텐 그게 아니더라.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머릿속에 맴돌고, 휴대폰에는 아직 너와 내가 처음 만난 날짜가 떠 있고, 그리고 내가 그 날 꺼낸 수학여행 갔다오라는 말은 아직도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와.
너한테 이제 죄책감도, 슬픈 마음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미안해. 아직은 못 할 거 같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보고 싶어.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