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9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닷새 만에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검찰 수사는 헌정 사상 4번째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15일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조사 일정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지난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게서 넘겨받은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직권남용, 뇌물죄 등의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손범규 변호사는 “소환 통보를 받았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노무현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면 3번째로 기록된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으로는 첫 번째다.
노무현 노태우 전두환 전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의 피의자 신분으로 2009년 4월 30일 검찰로 출두했다. 청와대 경호실로부터 제공받은 42인승 리무진 버스를 타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자택에서 5시간 동안 대검으로 이동했다. 오전 11시30분쯤 청사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포토라인에 섰다. 초췌하고 착잡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기자들의 쏟아진 질문에 “면목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허영 대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아 이인규 중앙수사부(중수부) 부장 사무실이 있는 청사 7층으로 올라갔다. 이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약 10분 동안 면담한 뒤 11층 특별조사실로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튿날인 오전 2시10분쯤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청사 밖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일 비자금 의혹으로 대검에 자진 출두했다.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첫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당시 그는 포토라인에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짧게 말한 뒤 청사로 직행했고, 7층 중수부장실에서 약 15분 동안 면담했다.
대검은 그해 서초동 청사로 이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안강민 중수부장에게 “내가 대통령 재임 때 지은 이 청사에서 내가 조사를 받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1층에서 조사를 받았다. 17시간가량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 오전 2시20분쯤 귀가했다. 두 번째 소환은 같은 달 15일이었다. 오후 2시50분쯤 출두한 그는 27시간 동안 조사받고 이틀 만에 귀가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검찰이 소환 일정으로 통보한 1995년 12월 2일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을 비난하는 성명,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다음날 새벽 집행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에 강제 연행돼 경기도 안양교도소로 압송됐다.
미리 보는 박근혜 소환조사
검찰은 과거 전직 대통령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을 꾸렸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형사8부, 삼성그룹 이외의 다른 대기업 뇌물공여 의혹을 특수1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등 혐의를 첨단범죄수사2부에 각각 배당했다. 소환을 앞두고 서면 질의서 발송, 공개 소환, 포토라인 설정 등을 놓고 전직 대통령 수사의 전례를 확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소환 당일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는다. 21일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해 포토라인에 잠시 선 뒤 청사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포토라인에서 짧게나마 입장을 밝힐지, 지난 12일 청와대 관저를 나와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밝혔던 입장을 되풀이할지가 관심사다.
전직 대통령 검찰 수사의 전례로 볼 때 박 전 대통령도 수사 책임자와 잠시 면담한 뒤 조사실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면담에 나설 책임자로는 서울중앙지검 이영렬 지검장이나 노승권 1차장검사가 언급되고 있다.
조사실은 청사 7층 영상녹화실에 마련됐다. 지난해 10월 최순실(구속기소)씨가 조사를 받았던 장소다. 검찰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직후부터 이 조사실의 확장 공사를 실시했다. 이 사건의 주임검사인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이 직접 박 대통령 신문을 담당하고, 뇌물 혐의 신문에는 이원석 특수1부장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적용한 혐의는 모두 13건이다. 대면조사 질문지만 50여장이나 될 정도로 방대해 조사는 최소 10시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박근혜-최순실 대질조사 이뤄질까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할 경우 검찰은 공범 관계에 있는 주요 피의자와의 대질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현재 구속수감 중인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그 대상이다. 엇갈린 진술을 확인하는 목적 외에도 피의자의 불완전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수단인 만큼 박 전 대통령의 진술에 따라 대질조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에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조사가 계획됐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은 청사 안에서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갔을 뿐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