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교도소 이야기 아니냐고? 물론 죄수와 교도관이 나온다.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은 그러나 기존 범죄영화들이 쌓아올린 선입견에서 조금 빗겨난다. ‘갱생의 공간인줄 알았던 교도소가 범죄의 온상이었다면?’ 저변에 깔린 가정부터 꽤 흥미롭다.
각종 부정부패와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 ‘프리즌’은 비현실적인, 아니 현실과 다르다고 믿고 싶은 교도소 안 풍경을 그려낸다. 그곳은 권력과의 은밀한 뒷거래로 패권을 장악한 실세 익호(한석규)가 지배하는 공간. 익호는 교도소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물론 욕조 목욕을 즐기고, 개인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 제 수족처럼 부린다. 심지어 교도소장(정웅인)까지 그에게 꼼짝 못한다.
어느 날 신참 죄수 한 명이 그의 눈에 띈다. 검거율 100%를 자랑하던 전직 경찰 유건(김래원). 특유의 깡다구와 다혈질적인 성격, 그리고 독기 꽉 찬 눈을 지닌 유건이 익호의 마음에 쏙 든다. 시키는 일마다 똑 부러지게 해내니 더할 나위 없다. 익호는 그를 곁에 두고 차츰 중책을 맡기기 시작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교도소 안팎을 자유로이 오가며 범죄에 가담하고 그 몫으로 주어지는 거액의 돈을 챙기는 것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이 범인일 거라고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완전범죄가 거듭되고, 익호는 난공불락의 세계를 구축하며 왕으로 군림한다.
줄곧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전개되는 영화는 러닝타임 124분 중 대부분을 폭력적인 화면으로 채웠다. 자연스럽게 피로감이 밀려온다. 사람 귀를 물어뜯거나 안구를 파내거나 손목을 절단하는 등의 장면은 그 소리만으로도 너무 끔찍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럼에도 도저히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익호 역의 한석규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극의 공기를 휘어잡는다. 유건 역의 김래원 또한 그에 뒤질세라 입체적이고도 폭 넓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정웅인 조재윤 신성록 이경영 김성균 등도 제각기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낸다.
극 중 익호는 유건에게 이렇게 말한다. “밖에서 보면 여기가 인생 막장 같지? 어차피 여기도 사람 사는 데야. 시간은 똑같이 흘러.” 또 이런 대사도 나온다. “확실한 게 어디 있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혹자는 ‘막장’이라 자조하는, 불안정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꽤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부당한 권력은 얼마나 치명적인 파괴력을 가지는가. ‘죄는 처벌받고 정의는 보호받아 한다’는 그 당연한 이치가 통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14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프리즌’ 기자간담회에서 한석규는 매 작품을 임하는 자신의 소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간략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운을 뗀 그는 한참 뜸 들이고 골똘히 생각한 끝에 아주 조심스러운 어조로 답변을 이어갔다.
한석규는 “배우가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라면서 “저는 ‘가짜를 통해서 진짜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평생 그런 기회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고, 원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2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