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마음 트는 카페, 하나님 사랑도 움트다… 연천 군남교회 카페

입력 2017-03-13 17:01
시골 도로변 교회 카페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섰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남자는 2만원을 내 놓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커피 찐하게 한 잔 줘. 그리고 아가씨도 한 잔 들고 이리 와 옆에 앉아.”

남자는 교회 카페를 흔한 시골 다방으로 안 것이다. ‘아가씨’는 바리스타였던 사모였다.

한적한 도로변의 연천 군남교회 카페 밤풍경. 마을 주민과 읍내 사람들이 밤마실을 나와 커피를 즐기며 교회를 알아가는 장소다.

이 이야기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군남교회 부설 교회 카페의 ‘레전드(전설)’다. 6년 전 얘기다.

군남교회 카페는 이런 시골에서 운영이 될지 의심을 할 정도로 말끔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도로 옆 ㄴ자를 뒤집어 놓은 단층 예배당 건물. 튀어 나온 쪽이 66㎡(20평) 넓이의 카페였다. 시골교회가 운영하기엔 역부족일 듯 한 공간이었다. 교회는 1955년 설립됐다.

9일 오후 찾아간 교회 카페는 대도시 한 가운데의 ‘별다방(스타벅스의 별명)’ ‘콩다방(커피빈의 별명)’ 같은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안에는 아기를 옆에 둔 젊은 엄마들이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등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카페 유리창 너머 교회 마당 놀이터엔 아이들이 나가 놀고 있었다. 또 등산복을 입은 동네 주민들이 20대 바리스타와 반갑게 인사하며 커피를 주문 후 창가에 앉았다. 통유리를 통해 넓은 들판을 볼 수 있었다. 연신 손님이 들어 두세 명의 바리스타 손놀림이 바빠졌다. 봉사자가 아닌 직원이다.

작은 사진은 ‘커피 배달’세트를 보여주는 이재은 목사

의외의 풍경은 당시 서른 갓 넘은 이재은(37) 목사가 군남교회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군사 분계선과 맞닿은 연천군 왕징면 노동리 영광교회에서 5년 간 시무한 뒤 부임한 이 목사에겐 예배당 누수를 막는 것과 교인의 영적 고갈을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영광교회를 반석 위에 올리면서 시골목회의 어려움과 섬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그는 군남교회 공동체와 마을공동체 특성을 빨리 파악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나는 예수의 종이다”의 자세로 섬겼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저는 아들이나 손자뻘이었어요. 그렇다고 어르신들이 선뜻 저를 막 대하시지도 못하잖아요. 어르신들 집에 불쑥 들어서기도 그렇고 어려움이 많았죠. 생각 끝에 커피를 갈아드리게 됐어요. ‘숭늉 같구먼’ 이런 말이 나오면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거죠.”

그의 이런 ‘핸드 드립’ 전도는 연천군 첫 커피 전문카페 설립을 낳았다.

“어느 날 카페 마실을 나온 중년 부부의 부인이 아메리카노를 앞에 놓고 우셔요. 농사짓는 아낙으로 20년을 살았는데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카페에서 남편과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마음에 쿵 충격이 왔어요. 잘 준비한 설교와 같구나 싶었습니다.”

이 목사는 커피에 대해 더 공부하고 3일 과정의 ‘바리스타학교’를 열었다. 인근 아기 엄마들, 교사와 공무원이 참여하더니 범위가 넓어져 농부들도 과정을 밟았다. 이 목사는 3일 간, 목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렸다. 다만 수료할 때 “정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사랑을 느낀 이들이 눈물 흘린다. 수료자만 400여명이다.

그간 30여명이던 교인은 100여명이 됐다. 누수 되던 예배당은 리모델링했다. 이 목사와 교인들은 축복에 감사해 4㎞ 떨어진 읍내 중·고등학교 앞에 카페와 사랑방 넓이의 예배 공간을 마련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다. 또 마을 독거노인과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주 1회 도시락 배달을 한다.

두 카페의 커피 값은 2500원으로 다른 카페보다 몇 백 원 정도만 싸다. 교회가 상권 침해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카페 재정과 교회 재정은 철저히 분리했다.

“남들 잘 눈에 안 띄는 변화가 있어요. 커피 믹스가 줄지 않아요. 나이 든 권사님들도 봉지 커피를 찾지 않으니까요.” 이 목사는 지금도 카메라가방에 핸드드립 세트를 넣어 커피 배달을 다닌다. 사모에게 커피 배달 위해 오토바이 한 대 사달랬다가 혼이 났다는 것이 두 번 째 레전드다. 

연천=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