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깜찍한 그 한마디로 전국을 뒤집어놓았던 소녀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됐다. 여전히 낯을 좀 가리고 수줍음도 타지만, 꽤 단단하게 홀로 섰다. ‘원더걸스의 소희’가 아닌 배우 안소희(25)로.
“예전에는 (가수로서 인터뷰할 때) 제가 말을 잘 못해서…. 그땐 언니들이 말을 많이 해줘서 (괜찮았는데)…. 배우로서는 거의 첫 인터뷰죠. ‘뜨거운 것이 좋아’(2008) 때 하긴 했었는데 너무 옛날이라…. 이상하게 대답하더라도 잘 써주세요. 하하.”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소희는 봄기운을 담뿍 머금은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맑은 얼굴로 조심스레 자신의 속이야기를 하나둘 꺼냈다. 취재진의 질문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듣고 신중히 단어를 골라 성실한 답변들을 내놓았다. 연예계 경력 11년차, 그는 다시 신인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한 안소희는 ‘텔 미’ ‘쏘 핫’ ‘노바디’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면서도 어릴 적부터 품어온 연기자의 꿈을 놓지 못했다. 2015년 팀에서 탈퇴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하트투하트’(tvN·2015) ‘안투라지’(tvN·2016)와 영화 ‘부산행’(2016)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했다.
“작품에 출연하고 그걸 선보이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게 즐거워요. 완성물을 놓고 이렇게 얘기 나누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요. 관객들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걸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어요. 같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 또한 기쁘고요. (제 마음이) 전달이 된 것 같고, 통한 것 같아서요.”
이번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안소희는 지금까지 중 가장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병헌 공효진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한 작품. 호주 워홀러 지나 역을 맡은 그는 제몫을 해냈다. 이주영 감독이 “해외 로케이션 촬영 여건이 여의치 않았는데 소희가 참 잘해줘서 고맙고 예쁘다”고 칭찬했을 정도.
안소희는 “배우로 전향한 뒤 처음 선보인 ‘부산행’이 보시는 분들게 ‘저 이제 연기합니다’라고 인사드린 작품이었다면, ‘싱글라이더’는 (배우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준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싱글라이더’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저는 아직 스크린에 제가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호주에서 한 달 동안 스태프, 선배님들과 힘들게 촬영한 게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시원한 마음이 들었어요.”
-가장 많은 분량 호흡을 맞춘 이병헌(강재훈 역)이 “열정이 많은 배우”라고 칭찬하더라. 촬영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선배님께서 너무 좋게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처음에 많이 긴장하고 떨려했었거든요. 워낙 대선배님이시니까요. 먼저 뭘 물어보고 말 거는 것조차 망설여졌었는데, 선배님께서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용기를 얻고 이것저것 여쭤봤죠.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병헌이 어떤 조언들을 해주었나.
“제가 어떤 신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선배님이 같이 모니터를 해주시면서 ‘이 부분은 좀 어색하다. 이 리듬으로 대사를 하면 좀 다르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그래, 이게 더 좋다. 이렇게 한번 가보자’ 하고 얘기해주신 기억이 있어요. 선배님께서 오히려 많이 물어봐주셨어요.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촬영했죠.”
-지나는 현실적인 청년의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다. 실제 안소희의 성장과정과는 거리가 있을 텐데, 얼마만큼 공감을 했나.
“맞아요. 저는 지나랑 좀 다른 10대를 보냈죠. 그래서 지나의 히스토리보다는 지나가 호주에서 느꼈을 감정에 더 공감이 갔어요. 지나는 밝고 씩씩한 친구예요. 근데 타지에서 혼자 굉장히 외로움을 느꼈을 거예요. 저도 (원더걸스 활동 당시) 딱 그 나이 대에 미국에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때 생각이 많이 떠올라서, 지나가 더 짠하고 불쌍했어요.”
-미국에서 활동했을 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그런데, 당시에는 쉽지만은 않았어요. 힘들기도 했고, 고생이라면 고생도 했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컸겠다.
“네 아무래도. 정말 처음 가는 곳이었고 언어도 달랐으니까요. 언어를 익히는 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일하면서 동시에 배워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멤버들이 같이 있긴 했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게 처음이었거든요. 많이 낯설었고,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나는 밝고 씩씩한 친구라고 했는데, 실제 본인 성격과는 얼마나 닮았나.
“저도 밝은 모습도 있고요.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에요(웃음). 저도 지나와 같은 20대니까 호기심 많고 그런 부분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물론 지나가 저보다 좀 더 활달하고 외향적인 친구이긴 하지만요.”
-가수로는 정점을 찍었지만 배우로는 이제 막 걸음을 내딛는 단계다. 원더걸스 시작할 때와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마냥 같을 순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은 현장이란 걸 경험해본 상태이니까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배우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드라마 보면서 맨날 따라하기도 하고(웃음). JYP 오디션 볼 때도 춤 노래 말고 연기도 했었거든요. 가수 데뷔 기회가 먼저 찾아온 거죠. 첫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를 찍으면서 ‘나 이거 할래’라는 생각이 정확하게 들었어요. 촬영장에서 제가 되게 즐거워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제 자신을 보며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구나, 하고 싶다’는 걸 느꼈어요.”
-가수 활동 때와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가.
“네. 매력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가수로서 무대에 서면 관객의 반응이 즉각 오잖아요. 리액션을 바로바로 받으면서 그 힘으로 계속 공연을 해나가는 재미가 있죠. 반면 연기는 기다려야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잘 될까? 사람들이 좋아할까?’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있지만, 그 후에 오는 반응에서 얻는 기쁨으로 또 다음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무대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음, 글쎄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없어요). 가수로 활동할 당시에 충분히 즐기려고 노력했고, 즐거움을 느꼈거든요. 지금은 연기에 좀 더 재미를 느끼고 싶어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는지.
“배우로 전향을 하기로 제가 결심한 이상 받아들여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죠.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겠지만 좀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스스로 부족함 느끼면 힘든 순간도 많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
“음, 저는 힘들거나 우울할 때 그걸 피하는 편은 아니에요. 좀 더 직시하려고 하죠. 힘들면 힘든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오히려 그걸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편이에요. 그러면 털어내기 쉽고, 다음 단계로 가기도 편해지거든요. 촬영하면서도 매 순간 힘들었다가 재미있었다가 해요. 근데 마지막은 항상 ‘재미있다’거든요. ‘그래도 좋다. 재미있다.’ 그래서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 하고,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이나 연기 외에 일상도 충분히 즐기고 있나.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러 선배님들께서 ‘연기를 하려면 정말 많은 걸 경험하고 느끼고 만나야 된다’고 얘기해주셨거든요. 혼자 하는 걸 많이 해보려고 해요. 극장도 잘 가고요. 여행도 좋아해요. 아직 혼자 여행가는 건 좀 무서운데, 이번에도 친구랑 같이 갔다 오려고 계획 중이에요(웃음).”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한 느낌이다.
“그러려고 해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잘 해내보려 하고 있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