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 선고하자…'좌절' '분노' 그리고 '환희'

입력 2017-03-10 16:42 수정 2017-03-10 23:23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일, 헌재 근처에 모인 시민들의 반응은 정확히 둘로 갈라섰다. 서울 종로구 안국역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좌절의 “아...”가 새어나왔고, 약 200m 떨어진 곳에선 환희(歡喜)의 “와!”가 터져 나왔다. 좌절은 “헌재로 가자”는 분노로 발전하더니, 이 과정에서 60대와 70대 남성 2명이 사망했다.


헌재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선고한 오전 11시21분, 안국역에서 낙원악기상가까지 채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집회 참가자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연단에서 참가자 중 한명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우리 애들의 머리를 빨갛게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 중년 여성이 “선고했대요, 파면이래!”라고 울부짖으며 태극기로 무릎을 내려쳤다.

차모(69)씨는 넋을 놓은 표정으로 흔들던 태극기를 멈췄다. “당연히 각하될 줄 알았다. 언론 검찰 법원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 석 달 동안 언론이 박 대통령을 몹쓸 놈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헐뜯으면 성인군자라도 흠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차씨는 참담한 표정으로 애국가가 나와도 따라 부르지 않았다.

50대 후반이라고 밝힌 정지수씨는 얼마간 멍하게 있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엔 태극기를 들고, 몸은 태극기로 두르고 있었다. 그의 악다구니는 단순하고 처절했다. “박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냐고!” 울음은 전염병 같은 것인지, 정씨가 울자 여기저기서 중년 여성이 울기 시작했다. 연단에서 누군가는 “박 대통령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예수님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탄핵 선고 30여분이 지나자 몇 명의 참가자들이 “헌재로 쳐들어가자” “쳐들어가자! 빨갱이다”라고 외쳤다. 불만과 적의(敵意)가 여기저기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가 연단에서 “헌재로 돌격!”이라고 외쳤다. ‘돌격’하지 않기도 민망한 상황이 됐다. 어른 키 만한 깃발을 든 중년 남성이 경찰버스에 올라가자 20여명이 따라 올라갔다.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당기고, 의무경찰을 밀쳐 경비벽을 무너뜨린 참가자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60대 김모씨와 70대 김모씨가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집회를 열었던 안국역 1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 도로는 환호로 가득찼다. 주최측 추산 5000여명이 모였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을 결정짓자 참가자들은 “이겼다”를 외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며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끼리 악수를 나누고 “수고했다”며 서로의 등을 두들겼다.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흘러나오자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집단적 신명은 행진의 원동력이 됐다. 오전 11시50분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율곡로를 따라 행진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나온 근처 직장인들도 행진 대열에 합류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와대 100m 앞인 효자동 치안센터에 도착하자 50대 여성 3명이 서로 껴안으면서 “우리가 해냈어”라고 말했다.

퇴진행동은 탄핵 결정이 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힘으로 박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잔칫날”이라면서도 “아직 눈물을 닦을 때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 세월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해야한다”고 밝혔다.

윤성민 이가현 임주언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