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선고하기도 전에 생중계를 지켜보던 집회 참가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승리를 자축하는 함성에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묻혔다.
사람들은 “이겼다”를 외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집회 참가자 중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만세’도 들려왔다. 일부 참가자들은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며 춤을 췄다. 낯선 사람들끼리 악수를 나누고 수고했다며 서로의 등을 두들겼다.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흘러나오자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안국역 6번 출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헌재 선고를 생중계했다. 이날 2000여명의 집회 참가자가 율곡로를 빼뺴곡 채웠다.
앞선 사전콘서트로 흥겨운 분위기였지만 오전 11시 헌재 선고가 시작되자 율곡로 일대는 숨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 권한대행이 탄핵 결정문을 읽자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눈을 감고 기도하듯 듣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이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데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자 사람들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이어 세월호 당일 직책을 성실히 이행했는지는 탄핵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읽자 집회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그러나 곧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이 직권남용으로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고,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읽자 시민들은 승리를 예감하는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퇴진행동은 탄핵 결정이 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힘으로 박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잔칫날”이라면서도 “아직 눈물을 닦을 때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 세월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도대체 왜 세월호만 안되느냐.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우리 애들이 왜 죽었는지만 제발 알려달라”고 오열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함께 흐느끼는 집회 참가자도 있었다.
오전 11시50분쯤 집회 참가자들은 율곡로를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나온 직장인들도 행진 대열에 합류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온이 1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에 산책 삼아 행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한 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를 향해 ‘박근혜 구속‘ 을 외쳤다.
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해 장필순, 더모노톤즈 등의 공연을 연 뒤 종로 도심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