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고령 가수 등 ‘아름다운 노래’ 재능기부로 여생봉사

입력 2017-03-09 17:21
부산 현역 최고령 가수 조아성씨가 9일 부산 중앙동 신창요양병원 강당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덤으로 살고 있는 여생을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며 살아갈 겁니다.”
부산지역 현역 최고령 가수인 조아성(77)씨는 9일 부산 중앙동 신창요양병원(병원장 권혁란) 강당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한 뒤 이 같이 다짐했다.

부산장애문화연예인연합회(회장 조규봉) 주최로 이날 열린 음악회에는 조씨 외에 부산에서 활동하는 원로 언더가수 10여명이 함께 했다. 한의사가 운영하는 도심형 요양병원인 이 병원에 있는 말기암 환자 등 60여명이 음악회에 참석했다.

병원 측은 이날 음악회에 참석한 환자들에게 빵과 음료수 등을 선물했다. 권 병원장은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건강이 빨리 회복된다”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이들 원로가수들은 7년 전부터 봉사단체를 만들어 부산·경남지역 요양병원와 양로원, 보호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노래로 원생들을 위로·격려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이웃들에게 나누기 위해서 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다양한 악기와 방송 시스템, 의상과 소품 등이 많아 이동시 비용이 많이 든다.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조씨는 배우 겸 가수다. 1963년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가 영화배우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던 조씨는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황해 박노식 도금봉 문정숙 등 톱스타가 대거 출연한 영화 ‘암살자 063’에서 간첩역의 조연을 맡기도 했다. 이후 남석훈 태현실 트위스트 김 강문이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메마른 입술’에 출연했지만 제작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중도에 촬영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맞았다. 그날 이후 조씨는 영화배우의 꿈을 접고 가수로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가수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나이트클럽과 카바레 등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온 힘을 쏟았지만 무명 생활의 연속이었다. 인기 가수가 되겠다는 꿈도 좋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조씨는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공장을 차리고 전화기 가게도 운영하는 등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끔 밤무대에 서기는 했지만 가수의 꿈은 아련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멀어져 갔다.

그런 그가 연예계로 복귀한 것은 2008년. 직장암 2기 판정을 받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68세에 찾아온 암세포.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마친 후 밀려오는 외로움에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삶은 ‘덤’이라는 생각에 여생을 요양병원과 양로원, 경로당을 찾아가 자선 공연을 하는 봉사활동에 전념키로 한 것이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 가수가 아니라 오로지 노래가 좋아서 무대에 서는 진짜 가수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주위의 도움으로 ‘천년이 가도’를 포함해 8곡이 수록된 음반 ‘메모리즈’를 냈다. 나이 72세의 늦깎이 신인 가수가 탄생한 것이다.

조씨는 “우리들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는 이웃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