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신학기가 되면 학교에 가기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를 거부하는 증상은 소아정신과에서 ‘응급’에 해당하는 증상이어서 신속한 대처와 처방을 요한다.
K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다. 학교 가기를 거부해 병원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별 문제없던 아이였는데 4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학교에 안 가려 하니 부모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K는 얼굴에 표정이 없고 무기력해 보였다. 말 수도 적고 그림을 그릴 때도 아래 부분에 전반적으로 아주 작게 그렸다. 줄기가 아래로 축 쳐진 버드나무를 그리고 ‘상태가 좋지 않아 죽을 것 같다’고 연상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투사한 것이었다. 부모 사이의 불화가 오래 지속되었던 K는 늘 긴장되고 불안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면서 근근히 적응했던 K가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서 한계가 왔던 것이다.
K는 조금 다른 경우지만 학교 거부 증상의 가장 흔한 원인은 유아기에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분리 불안’이 나이가 들어 학교를 다니면서 불거지는 것이다. 분리 불안은 어린 시절 주 양육자(대개는 엄마)와의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못했거나 과잉보호 등의 양육태도에서 기인한다.
분리 불안 장애는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프다’는 등의 신체적인 증상으로 많이 나타나고, 특히 학교 가는 날 아침 심하다. 엄마와 떨어지기를 거부하면서 심하게 울고 떼를 쓰지만 막상 학교에 가서는 그럭저럭 지낸다. 하지만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보이는 것과는 달리 학교에 가서도 ‘엄마가 집에 없으면 어쩌나’라거나 ‘엄마가 사고 났으면 어쩌나’하는 등의 걱정과 불안으로 학습이나 또래 관계에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밖에 실제로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소근육 기능, 운동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또 학업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도 있고, 아이의 기질 상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엔 아이를 조급하게 몰아 부치지 말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 보자. 말로 잘 표현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다.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빨리 전문가를 찾아보자.
학교를 가기 두려워하는 증상이 심해져 실제로 등교를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해결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한 두번 결석하면 그 다음엔 학교 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이의 감정을 잘 읽어주되 초등생 정도라면 학교엔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단호한 태도도 보여줘야 한다.
부모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아이가 교실에 들어 갈 수 있게 해줘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부모와 분리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원인에 따른 대처도 병행 되어야 한다.
이호분(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