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공동 연구진이 뇌영상기술을 접목해 한의학의 대표 기술인 ‘침 치료’가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뇌 구조를 변화시켜 통증을 개선해 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해 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임상연구부 김형준 박사팀은 미국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손목터널증후군(수근관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진짜 침과 가짜 침의 비교 임상 연구를 진행해 진짜 침만이 뇌의 감각영역과 정중신경 전도의 변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9일 밝혔다.
정중신경은 손바닥과 손가락의 감각과 움직임, 손목의 뒤집힘 등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팔의 말초 신경 중 하나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들로 이뤄진 작은 통로인 수근관이 두꺼워지거나 내부 압력이 높아져 정중신경을 압박해 생긴다. 주로 손가락과 손목이 저리고 아프며, 정중신경 전도 속도가 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목을 자주 쓰는 주부와 장시간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를 사용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흔히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이 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6만7125명이며 이 중 77.7%가 여성이었다.
이번 연구는 미국 하버드의대 마르티노스 바이오메디컬 이미징 센터 비탈리 내퍼도 교수팀과 공동 연구로 미국에서 진행됐으며 신경학 분야 권위지 브레인 최신호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기존에 뇌 영상을 통해 침 자극시 뇌의 반응을 살펴본 연구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임상 연구와 뇌영상 기술을 접목해 특정 질환에서 진짜침이 가짜침보다 효과가 좋고 진짜침만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치료기전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연구팀은 79명의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56명은 진짜침 치료군에, 23명은 가짜침 치료군에 배정했다.
진짜침 치료군은 다시 통증 부위인 손목에 주로 침을 맞는 근위침 치료군과 아픈 손목의 반대편 발목에 침을 맞는 원위침 치료군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8주간 16회의 침과 전기침 치료를 실시했으며 치료 전후로 신경 전도 검사를 통해 정중신경 전도속도(잠복기)를 측정하고 ‘보스턴 손목터널증후군 설문(BCTQ)’으로 통증 경감도를 조사했다. 또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와 DTI(확산텐서영상) 촬영을 통해 뇌의 기능적‧구조적 변화를 측정했다.
우선 정중신경 전도검사 결과 진짜침은 감각신경 잠복기를 평균 0.16ms(근위침 0.16 ms, 원위침 0.17 ms) 감소시켰으나, 가짜침은 오히려 0.12 ms 증가시켰다. 즉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인해 느려졌던 신경전도 속도가 진짜침 시술 후에만 개선됨을 확인했다. 1ms(밀리세컨드)는 1000분의 1초를 나타낸다.
이어 fMRI를 이용해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검지, 중지를 자극하였을 때 뇌의 일차감각피질에서 가장 활성화되는 영역의 꼭지점간 거리(검지-중지 거리)를 측정했다.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검지-중지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기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측정결과 진짜침 치료 후에는 줄었던 검지-중지 거리가 평균 1.8 mm(근위침 2.3 mm, 원위침 1.3 mm) 증가한데 반해, 가짜침 치료 후에는 평균 0.1 mm 감소할 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DTI를 이용해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뇌백질(white matter) 구조를 살펴보았다.
진짜침 치료 후에는 신경전도속도가 개선됨에 따라 아픈 손에 해당하는 뇌백질의 구조 이상이 일부 회복되는 등 구조적 변화가 관찰됐으나, 가짜침 치료 후에는 변화가 없었다.
미국 하버드의대 비탈리 교수는 “침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적은 통증 치료법으로, 이 연구는 침이 신경조절작용을 통하여 뇌의 감각영역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