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K(33) 목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서울 A교회의 교구담당 부목사다. K목사는 20~30대가 명절 때마다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로 꼽는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수시로 듣는다. 담임목사를 비롯해 교회 성도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만 물어도 족히 1000번 가까이 된다. 반복적으로 물으니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하지만 그 관심을 단순한 오지랖으로 치부하기는 곤란하다.
“아직 결혼을 못했는데 전임교역자로 써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자조 섞인 K목사의 말은 불안한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결혼 못하면 교회를 떠나야 하지 않느냐’ ‘올해가 마지노선이다’ 등 동료 부교역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염려 아닌 염려는 그를 더 초조하게 만든다. 당장 결혼할 사람을 찾기도, 다른 임지를 찾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른 직종에 비해 목회자는 결혼 여부가 안정적인 자리를 얻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전임교역자가 되려면 결혼은 필수’라는 암묵적 불문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교단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전임교역자가 될 수 없다’는 법이나 규정이 있는 곳은 드물다. 기독교한국침례회가 기혼자(선교사나 군목 파송 등은 예외)에게만 목사안수를 주는 게 눈에 띄는 정도다.
그럼에도 대다수 교회가 전임교역자를 뽑을 때 기혼자를 선호한다. 그 근거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당부(딤3:2)를 들곤 한다. 바울은 영적 리더인 감독의 조건으로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고 신중한 사람’을 꼽았다. 한 교단의 총회 관계자는 “목회자는 왜곡된 결혼관이 팽배한 시대에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며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타당한 이유이지만 악용될 수도 있다. 경기도 수원 B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했던 L(31) 목사는 최근 교육부장인 장로로부터 “부서 사역을 그만 두고 다른 임지를 알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혼인 그가 여성 청년들과 있는 모습이 덕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목사가 여성 청년들과 사적으로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교회에서 돌았던 것.
L목사는 “여성 청년 두 명이 각각 직장과 가정에서 힘든 일을 겪어 상담을 요청했고, 교회 근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도해 준 것이 전부다. 청년들이 증명해 줄 수 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목사님이 결혼을 안 해서 그런 것이니 어쩌겠느냐. 더 이상 말이 안 나오게 그만둬 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L목사는 “성도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기혼자인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며 헛웃음을 보였다.
이들 목회자 중에는 불안정한 경제여건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L목사는 대학원 학자금 대출을 아직 갚지 못했고 K목사는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허덕이고 있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서 출발해 인간관계와 희망 등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특정수를 지정하지 않은 N포세대까지 등장한 지 오래다. 교회가 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미혼을 이유로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목회자들은 그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오히려 스스로 N포세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할 뿐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본을 보이라’고만 강조하며 미혼인 목회자들을 벼랑으로 모는 교회의 모습이 오히려 덕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이사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