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승만의 하야에서 배워라

입력 2017-03-02 11:30 수정 2017-03-02 12:13
1960년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며 사임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그는 이후 경무대를 떠나 서울 동숭동 이화장 집으로 향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나와 애석해 했다.

그는 ‘4.19혁명’으로 불리는 3~4월의 반독재 시위와 그로인한 사망자 180여 명의 참사를 4월 26일에야 알게 됐다. 고령에 따른 판단력 저하와 인의 장막에 쌓인 현실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는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찾아가 위로하기도 했다. 유체이탈적 화법이긴 하나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그는 몰염치하진 않았다고 본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고 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6.25한국전쟁, 전후라는 격동기를 계몽적 자유주의 사고로 다스려온 그의 공과는 역사가에 의해 계속 다뤄져야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DNA를 갖고 태어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신봉자가 되어 국가를 이끌기까지 정치적 책략의 변주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승만은 선비의 의관정제 자세로 살았다. 그리고 평등주의, 실용주의, 개척정신을 강조하는 미국적 생활방식을 죽을 때까지 계속했다.

어쨌든 그는 ‘사사오입’과 같은 무리수를 두지 말고 물러날 때를 찾았어야 했는데 노회함마저도 십상시와 같은 권력 부나방들에 이용당하고 말았다. 시대를 너무 빨리 살았던 한 자유민주주의자 이승만에게 연민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승만의 하야를 박근혜 대통령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하야를 선언해야 한다. 이토록 국민을 분열시켜 놓고 아직도 자신이 억울하다고 버티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리더가 할 처신은 아니다. 분열된 국민 어느 한편도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일이다.

탄핵 인용과 기각,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대한민국 역사가 후퇴한다. 그 결과는 가족·세대·지역·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불신이라는 깊은 상처를 줄 것이다.

2017년은 1960년과 달리 국민의 소득, 교육, 세계관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 때는 이승만과 같은 계몽적 리더십이 요구됐고 지금은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내내 화합보다 척결을 축으로한 리더십을 휘둘렀다. 그 적폐가 탄핵을 낳았다.

박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마지막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하야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은 공적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하야하는 힘'을 발휘해야 공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공적 광장 없는 전선은 폭력을 낳는다. 국민과 민족을 위해 박 대통령이 이승만과 같은 마지막 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