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의 ‘박근혜 특검’ 생생기록] 76. 구속13, 기각6, 기소30… ‘미완’의 90일간 항해

입력 2017-02-28 16:03 수정 2017-03-01 09:22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사기간 만료일인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역사적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90일간의 대항해를 마쳤습니다. 박 특검이 임명장을 받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20일까지 20일간의 수사준비를 마친 뒤 21일 현판식을 신호탄으로 숨 가쁘게 이어온 70일간의 공식 수사를 끝낸 것입니다. 이번 특검은 박 특검과 4명의 특검보, 20명의 파견검사, 40명의 특별수사관, 40명의 파견공무원 등 총 105명의 역대 최대 규모 수사팀으로 짜였습니다. ‘슈퍼 특검’이었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수사대상은 모두 15가지(관련 인지사건 포함)였습니다. 항해 도중 거대한 파고에 난항을 겪기도 했으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오늘 나머지 피의자 17명(최순실 안종범 추가 기소 포함)을 대거 재판에 넘기면서 공식 활동은 모두 종료됐습니다. 이로써 구속 13명, 영장기각 6번, 기소 30명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구속자, 기소자는 12차례의 역대 특검 중 최다 인원입니다. 특검의 역사를 새로 쓴 셈입니다. 하지만 일부 한계도 드러내며 수사는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남은 의혹 검찰 인계, 최종 수사결과 발표, 재판 공소유지만 남았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공식 수사 70일째, 마지막 날(2월 28일 화요일)의 이야기입니다.

특검팀 수뇌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충근 특검보, 이용복 특검보, 양재식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 뉴시스

# 공식 수사 마지막 출근길=특검 수뇌부는 오늘도 오전 9시 전후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팀 사무실에 정상출근했습니다. 박 특검도 평소와 다름없는 진중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마지막 날을 맞는 심경을 묻자 답변을 사양했습니다. 박충근 이용복 양재식 이규철 등 4명의 특검보는 가벼운 목례로 취재진에게 인사했습니다. 이규철 특검보는 “90일이 빨리 갔다”며 “고생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여러분들 덕에 열심히 잘하게 돼서 고맙다”고 답했습니다.

박 특검은 오늘은 입을 다물었지만 3월 3일에는 많은 소회를 밝힐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박 특검이 오는 3일 특검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 취재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갖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최종 수사결과 발표는 3월 6일 오후 2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출근길에 공소유지를 위한 일부 잔류 인력이 사용할 새 사무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사 갈 곳은 이번 주에 정하고 다음 주에 이사할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특검팀의 기존 수사 인력은 수사결과 발표 전까지는 이곳 사무실에 머무르지만 공소유지 인력만 남는 다음주에는 새로운 사무실을 물색해 이전해야 합니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가 28일 오후 마지막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무더기 기소… 박근혜 우병우는 검찰 이첩=특검팀은 오늘 나머지 피의자 17명을 일괄 기소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2명은 구속 기소하고, 15명은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규철 대변인은 오후 2시30분 마지막 정례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수사결과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수사결과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 이런 부분은 특검에서 직접 말씀드리기 부적절해 보인다. 그에 대한 모든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발표된 불구속 기소 대상자에는 삼성 뇌물공여 혐의 등과 관련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 수뇌부 4인방이 모두 포함됐습니다.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을 주도했던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배임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비선 진료’ 의혹과 관련해선 최순실씨의 단골 성형외과 의사인 김영재 원장(뇌물공여·의료법위반·마약관리법위반·국회위증)과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의료법위반), 정기양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국회위증),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국회위증)가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비선진료 방조 등)도 어제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으로 기소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과 그에 관하여 이미 확보된 증거, 피의자의 주거, 직업 및 연락처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어제 저녁 영장을 기각했죠. 특검팀이 마지막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으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와 관련해서는 정씨 특혜에 관여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이원준 이대 체육과학부 학부장, 이경옥 이대 체육과학부 교수, 하정희 순천향대 교수 등 3명이 기소됐습니다. 하 교수는 최씨에게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소개해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씨는 뇌물수수·알선수재·범죄수익은닉·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됐습니다. 최씨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취득한 뇌물수수액과 은닉재산을 동결해달라는 추징보전 절차도 취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달리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불구속 기소하는 대신에 사건 전체를 검찰에 이첩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우 전 수석의 경우 검찰이 개인비리를 포함해 모든 의혹을 조사한 뒤 처리하는 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검찰이 바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한부 기소중지를 하는 대신에 뇌물수수 피의자로 추가 입건한 뒤 검찰에 이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대변인은 “최종적으로 검토해보니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할 경우에는 처분한 것은 특검이고 해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재개하는 기관은 검찰이 될 수 있는데 수사 과정상 바로 (검찰이) 수사에 나설 필요도 있을 수 있어 그런 사정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했을 때 절차상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검찰이 즉시 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13명의 구속 피의자들을 사건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삼성 관련(2명)=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5명)=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이화여대 비리(5명)=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 최경희 전 총장 ▶비선 진료(1명)=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불구속 기소된 피의자는 오늘 15명 이외에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등 2명이 더 있습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피의자는 김상률 최경희 이재용 박상진 우병우 이영선 등 6명입니다. 이 중 최경희 이재용은 재청구된 구속영장이 발부됐죠.

이 대변인은 마지막 브리핑 말미에 마무리 발언을 자청했습니다. “특검은 브리핑을 통해 수사 과정을 국민들에게 매일 보고함으로써 수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 그동안 특검 브리핑에 관심 가져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고 말한 뒤 국민께 ‘꾸벅’하고 정중한 인사를 올렸습니다.

수사기간 만료일인 28일 오전 '특검팀 힘내십시요,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꽃 바구니가 특검 사무실로 배달되고 있다. 뉴시스

# 공소유지 총력=수사 못지않게 공소유지도 중요합니다. 최종적으로 유죄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검법상 공소유지 관련 규정은 이렇습니다. “특별검사는 수사완료 후 공소유지를 위한 경우에는 특별검사보, 특별수사관 등 특별검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인원을 최소한의 범위로 유지해야 한다”(제7조6항)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에 회부된 대상자가 많아 특검팀은 수사실무를 주도한 파견검사 20명 중 절반 정도의 잔류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무부와 협의한 결과 파견검사는 8명이 잔류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기간은 특검법(제10조)에 정해져 있습니다. 판결의 선고는 1심에서는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 2심과 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선고일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 대법원 최종심까지 최대 7개월입니다. 특별검사가 공소제기한 사건의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건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합의부에서 맡습니다(제18조). 국회에는 사건 처리도 보고해야 합니다. 특검법 제11조에 따르면 ‘특별검사는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결정을 했을 경우와 공소를 제기했을 경우 각각 10일 이내에 이를 대통령과 국회에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특검팀 수사기간 마지막 날인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특검팀의 미완의 수사대상을 넘겨받아 수사에 나서야 한다. 뉴시스

# 성과 컸지만 한계도 드러내=큰 성과를 보였지만 한계도 있었습니다. 국정농단 의혹의 정점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에 실패했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무산됐습니다. 박근혜정권의 핵심 실세로 국정농단의 최대 책임자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구속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검팀 내 수뇌부와 현직 파견검사 간 이견도 노출했습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수사도 미흡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특검팀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정유라씨의 한국 송환 결정이 미뤄져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도 못했습니다. 삼성 외 다른 대기업 수사도 시간에 쫓겨 손대지 못했습니다. 수사기간이 너무 짧아 ‘미완의 수사’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특검팀은 많은 활약상을 보였습니다. 특검팀 모두 그간 고생 많이 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제 남은 의혹은 다시 검찰의 몫이 됐습니다. 기존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부활해 사건을 다시 맡을지, 검찰총장 직속의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넘겨받을지, 제3의 새로운 수사팀을 꾸릴지 아직 미정입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그리고 검찰은 과연 결자해지를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은 가지 않지만 그래도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요.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