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 수장이 사상 처음으로 로마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를 방문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현지시간) 건립 200주년을 맞은 로마 소재 성공회 올세인츠(All Saints) 교회를 찾아 로버트 인스 유럽 성공회 주교와 함께 기도를 올렸다.
교황은 이날 강론에서 “성공회와 가톨릭은 지난 수세기 동안 상호불신 속에 의심과 적개심을 품고 서로를 바라봤다”고 시인하며 “앞으로 두 교단의 신앙이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더 많이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날의 만남으로 격려를 받았다고 강조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유익한 은혜가 타인과 함께 협력하는 데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게 된 데 겸손히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에 인스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난민과 이주민에게 보인 연대를 높이 평가하며 환영의 인사를 전했고, 올세인츠 교회 성도들은 교황에게 사순절(四旬節·부활절 전 40일간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 케이크와 수제잼, 영국식 인도소스(처트니)를 선물했다.
영국 성공회는 1534년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로마 바티칸과 갈등을 빚다 가톨릭과 분리된 영국의 국교회다. 당시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단 빌미로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려 했는데, 로마 교황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성공회를 출범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방문 일정 내내 두 교단의 차이와 관련한 발언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회는 여성 성직자 서품과 동성애 주교 허용 등에 있어 로마 가톨릭과 다른 입장을 견지해왔기에, 상호간 갈등 극복과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교황의 세심한 배려로 보인다.
고령으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 지난 2013년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화해를 우선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해 10월엔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함께 가톨릭·성공회 공동미사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를 열기도 했다.
교황은 웰비 대주교와 함께 내전과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남수단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11년 국가 지위를 얻은 남수단은 2013년부터 계속된 내전으로 300만 여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굶주림으로 공통 받는 남수단 사람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