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관은 2011년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이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고, 특히 사회적인 약자,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철학처럼 그는 보수색채가 짙어진 대법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내온 대법관으로 꼽혔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 때에는 “정부 정책에 비판 의사를 표하며 개선을 요구한 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그가 내린 대법 판결들에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으로 근무하며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의 확립에 애써온 면모가 담기기도 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때에도 수사기관에서 한 것보다 법정에서 한 진술을 신뢰해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했든 다수의견은 법정진술보다 검찰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대법관은 법의 이념 근본에 정의와 평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와 평화를 함께 추구하고 모순 없이 수호해야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법관으로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주권자인 우리 국민의 참된 의사가 어떠한지 끊임없이 자문할 책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과다 선임료로 비판받는 ‘전관예우’ 관행에 대해서는 “법조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법관도 외부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공적인 존재”라는 시각도 제시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공직생활을 원칙주의로 평가했다.
이런 이 대법관의 퇴임은 안타깝게도 국정농단 정국 여파로 얼룩졌다. 그의 퇴임일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종변론기일이었다. 이 대법관의 후임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 사태로 지명되지 않아 공석 사태가 불가피하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대법관의 후임 인선절차가 진행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단은 진행이 중지된 상태”라고 답했다. 대법관 인선에는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에 이어 대통령의 임명 절차가 필요한데,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상유지적’ 행위를 벗어나는 임명을 할 수 없다는 견해가 크다는 것이었다. 후임의 하마평조차 거론되지 않는 대법관의 퇴임은 처음이라고, 많은 대법원 인사들이 한숨을 쉬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